11일 오후 7시쯤 서울 이태원동 '세계음식거리' 폭 5m 남짓한 이면도로에서 남자 4명이 둥글게 서서 축구공을 가볍게 발로 툭툭 차고 있었다. 남자들의 정체는 길 양측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 평소면 저녁 손님으로 거리가 붐벼야 할 시간에 사람이 없어, 이들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30여분 만에 네 남자는 "그만하자"며 헤어지더니 각자의 빈 가게로 들어갔다. 60평 규모 맥줏집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오늘은 손님이 아예 없었고, 지난주 금·토·일엔 합해서 네 명 받았던가?"라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어 "하루 최소 매출이 60만원은 나와야 본전인데, 주말간 200만원 가까이 손해 본 거예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문 열고 한 명이라도 오길 기다려야죠."

지난 11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에 인적이 끊겨 있다. 평소 식당과 술집, 클럽에 들른 방문객들로 들썩일 시간이지만 클럽발(發)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 감염 이후 손님을 보기 어려워졌다.

이국적 분위기로 '서울시 내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이태원이 최근 불거진 클럽발(發) 집단 감염 후폭풍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 2일 A(29·경기도 용인)씨가 이태원 클럽에 다녀간 뒤 13일까지 111명(13일 기준)이 A씨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전염돼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1990년대 중반 이태원이 지금처럼 유명해진 이래 지금 같은 적막한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4번 출구 인근에 있는 삼겹살집 '걸구네'는 평소 30분 넘게 줄을 서야만 들어갈 수 있는 유명 음식점이다. 그러나 11일 오후 8시 30분 식당 내부 테이블 20여개 가운데 손님이 앉은 테이블은 3개에 불과했다. 이동희(60) 사장은 "평소 200만원이던 하루 매출이 8일부터 10만원도 안 된다"며 "오늘도 네 테이블뿐"이라고 했다.

배달 음식점도 타격이 크다. 가게엔 식탁 4개만 두고 주로 배달로 매상을 올리는 이태원 한 중화요릿집은 11일 방문객 1명, 배달 주문 3건을 받았다. 사장 박모(49)씨는 "매출이 평소의 10%"라며 "바로 옆에 20년 이상 영업한 음식점이 있는데, 평일에 문 닫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택시 기사들조차 이태원을 꺼린다. 택시 기사 최경무(47)씨는 "콜이 들어왔을 때 목적지가 이태원이면 웬만하면 받지 않는다. (기사들이 선호하는) '장거리 콜'이 들어와도 안 간다"며 "만약 확진자가 탄다면 일주일은 그냥 공칠뿐더러, 나도 감염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많은 상인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불만을 드러냈다. 한 상인은 "확진자가 강남 룸살롱도 다녀왔는데, 그땐 '유흥업소'라고 뭉뚱그리더니 유독 이태원 클럽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1일 "(황금연휴에) 이태원을 방문하셨던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강원도교육청은 11일 "자체 조사 결과, 원어민 교사 등 55명이 이태원에 방문해 자가 격리시켰다"고 발표했다. 이 중 클럽 방문자는 없었다. 12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시 이태원 클럽 근처에 있었던 기지국 접속자 1만905명의 전체 명단을 서울시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과 대기업도 '이태원 방문자'를 가려내 격리시키고 있다. 대기업 본사에 근무하는 A(28)씨는 지난 8일 이태원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2주간 사실상 유급휴가를 지시받았다. A씨는 "단순히 카페에 다녀온 것뿐인데 그게 이태원이었다는 이유로 22일까지 회사에 나오지 말라더라"며 "단체 채팅방에서 숨죽이고 있자니 눈치가 보이고 죄지은 기분"이라고 했다.

이태원 상인들은 정부 지침대로 했을 뿐인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대진 이태원관광특구협회 이사는 "클럽 개방을 허락하면 젊은 청년이 몰린다는 예상은 누구나 가능했는데도 문을 열도록 해준 것은 정부"라며 "감염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는데, 정부의 지나친 '이태원 클럽' 강조로 상인들만 죽어난다"고 했다. 실제로 클럽 관련 확진자 111명 중 이태원 거주자는 4명이다.

"대구도 코로나 도시로 찍힌 뒤 두 달간 섬처럼 변했잖아요. 다들 10년 가까이 일했고 코로나 사태에도 함께 버틴 직원들이지만, 이번엔 정말 힘들 것 같네요." 삼겹살집 이동희 사장은 "추이를 좀 지켜보고 안 되면 일부 직원은 휴직시켜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