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자는 12일 "6개월간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라고 말했다. 딸 미국 유학 자금을 둘러싼 보도로 억울하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도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정의연 이나영 이사장은 "왜 시민단체가 의혹에 몰려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회계 공개를 거부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이한상 교수는 "어디서 돼먹지 않게 엉터리 회계를 해놓고 삿대질이냐"며 "주무 기관이 증빙 일체를 요구해 감독하고 비위가 발견되면 단체를 해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은 이날 정의연에 공익법인 결산 서류 수정 공시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모금 위한 후원의 날 행사장의 윤미향 - 작년 11월 서울 종로구의 맥줏집 옥토버훼스트에서 열린 정의기억연대 후원의날 행사에서 윤미향(왼쪽 넷째) 당시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 끝은 한경희 사무총장, 오른쪽 두 번째는 한국염 운영위원장이다.

정치권에선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불거진 정의연 내부 문제를 두고 윤 당선자가 '조국 모델'을 따라 '진영 싸움'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여권 인사들 사이에선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의혹이 제기되면 해명하거나 사과하는 대신, 의혹을 제기한 쪽을 '수구' '반개혁'으로 몰아갔다. 지난해 9월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조 전 장관은 자녀 인턴 증명서 위조 의혹 등과 관련한 다양한 증거와 증언이 나왔지만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대신 조 전 장관은 핵심 지지층을 자극하며 검찰과 언론, 야당을 '반개혁' 세력으로 규정했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윤 당선자를 향해 "여자 조국"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조 전 장관처럼 '친일' 프레임을 들고나왔다. 그는 "보수 언론과 미통당(미래통합당)이 만든 모략극"이라며 "한·일 위안부 협상을 체결하고 한마디 사과조차 하지 않은 미통당과,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시각을 조금도 바꾸려 하지 않는 친일 학자에게 맞서겠다"고 했다. 돈을 어디 썼냐고 물었더니 "친일파"라고 공격했다. 이 논리면 이용수 할머니도 친일파가 된다.

여권은 일제히 윤 당선자를 엄호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 이수진 당선자 등도 "친일·반(反)인권·반(反)평화 세력" "보수 망나니의 칼춤"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베규탄시민행동, 민변 등 친여(親與) 단체들도 일제히 "아베 정부에 부역하는 친일 세력이 수요 시위를 훼손" "정의·기억·연대는 계속돼야" "정의연에 자행되는 근거 없는 비난과 모욕은 또 다른 폭력"같은 논평을 냈다.

'조국 현상'은 확대하고 있다. 조 전 장관 아들의 인턴 증명서를 허위 발급한 혐의로 기소된 열린민주당 최강욱 당선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을 기소한 검찰과 언론을 향해 "검·언 유착"이라며 "세상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겠다"고 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재판받고 있는 황운하 민주당 당선자도 검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자 오히려 '검찰 개혁'을 내세웠다. 부동산 실명제 위반 의혹으로 더불어시민당에서 제명된 양정숙 당선자도 "개인 정보를 무단 유출한 시민당과 KBS를 형사 고소하겠다"고 했다.

자성(自省)보다는 남 탓이나 '피해자 코스프레'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조국 현상'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는 이날 윤 당선자에 대해 "위안부 할머님에게 보낸 후원의 마음이 제대로 쓰였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정파적 이해득실의 윽박으로 방어하려는 태도야말로 천박함의 발로"라고 했다. 허영구 전 민노총 부위원장도 "수구 보수 언론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면서 후원금 사용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경우 "윤 당선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