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당국이 이태원 클럽 방문자들의 평균 잠복기가 끝나는 13일까지 환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가 카드 내역 조사, 통신사 기지국 기록 조회, 폐쇄회로(CC)TV 확인에 나섰다. 자발적 검사를 권고하다가 공권력을 동원한 추적으로 역학조사 수위를 높인 것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12일 브리핑에서 "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상황에서 더 악화할 경우 감염자가 급증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날 이태원 클럽 확진자는 106명으로 늘어났다. 이 중 최소 29명이 2차 감염됐다.

카드·CCTV·통신 기록 다 뒤져 추적

정부는 이날부터 경찰 인력 8559명을 동원해 이태원 클럽 이용객을 추적하기로 했다. 통신사들에서 이태원 클럽 인근 기지국 기록을 제공받아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6일까지 클럽 부근에서 30분 이상 머물렀던 1만905명을 파악했고, 이들에게 진단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코로나와 관련한 통신사 기지국 위치 정보 제공은 서울 구로구 콜센터, 동대문 PC방, 서래마을 와인바 집단감염 사례에 이어 네 번째다.

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메이드’에서 방문자 중 확진자가 발생해 용산구 보건소 관계자들이 방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클럽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초기 확진자인 용인시 거주 29세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아, 감염 경로를 확인할 수 없는 확진자가 대량 발생할 우려가 번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신용카드사에서 카드 이용자 494명의 명단을 확보해 진단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를 하도록 했다"고 했다. 서울시는 11일부터 '익명 검사'도 하고 있다. 박 시장은 "익명 검사 실시 전 3500명에 그쳤던 하루 검사자가 654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했다. 방역 당국이 총력전에 나선 것은 젊은 층이 무증상 상태에서 감염돼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20세 남성은 2일 이태원 클럽 방문 이후 9일간 무증상 상태로 신촌 대학가와 서대문구 연희동 등을 돌아다니다가 지난 11일에야 격리됐다.

3차 감염 추정 사례도

3차 감염 추정 사례도 나왔다. 서울 관악구의 26세 남성은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첫 환자(29·경기 용인)와 지난 2일 이태원 킹클럽에서 접촉한 후 지난 8일 확진됐다. 이 남성의 관악구 자택에 머문 도봉구 26세 남성 조리사가 9일 확진돼 2차 감염으로 이어졌다. 이 조리사와 지난 7일 저녁 30분쯤 같은 코인노래방에 있었던 도봉구의 18세 남성이 13일 확진됐다. 이날 또 서울의 한 고교 3학년생이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서울 소재 고교들은 서울시교육청 지침에 따라 '이태원 클럽을 다녀온 학생들은 검사를 받도록 하라'는 문자를 고교생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백경란 성균관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규모를 볼 때 4월 말~5월 초 연휴가 아닌 한 달 전 또는 그 이전부터 전파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태원 클럽 9곳서 확진자 나와

킹클럽, 트렁크 등 방역 당국의 당초 조사 대상 이태원 클럽 다섯 곳 이외에도 메이드, 피스틸, 더파운틴, 핑크 엘리펀트 등 다른 클럽 네 곳에서도 확진자가 나와 감염 경로 규명이 어려워졌다. 또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과장은 이날 "주로 이태원 클럽에 머물다가 수면방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는데 서울 강남구 소재 '블랙수면방' 이용객과 접촉자 추적이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 강도를 완화한 지난달 20일 서울시는 클럽 등 유흥 시설에 내려진 집합금지 명령을 해제했다. 이에 이태원 클럽들은 지난달 24일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클럽 같은 유흥 시설은 문 안 연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문을 열게 하면 안 된다"는 전문가 지적이 있었지만 묵살됐다. 서울시는 이태원발 감염이 확산하자 지난 10일에야 다시 유흥 시설 운영 중단 행정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