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에서 2014년부터 2018년은 '탱탱볼 시대'라고 불린다. 공이 잘 튀는 고무공처럼 맞으면 쭉쭉 뻗어나가 홈런이 양산되고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이 치솟은 시기다. 극심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 때문에 리그 질이 낮아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해 공인구 반발력(튀는 힘)을 낮췄고, 경기당 홈런이 2018년 2.44개에서 1.41개로 줄어들었다. 투수들의 평균자책점 역시 1점 정도 낮아졌다. 하지만 720경기 중 27경기(3.75%)를 치른 올 시즌 초반에는 경기당 홈런이 2.26개로 지난해보다 60% 정도 늘었다.

야구 팬들은 일제히 공인구를 의심했다. 여러 외야수가 타구가 판단보다 더 멀리 뻗어나가는 바람에 처리에 어려움을 겪자 의심이 더 커졌다. 하지만 지난 7일 발표된 KBO 공인구 1차 수시 검사 결과에선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절치부심한 타자

공인구는 그대로인데 장타가 많이 나오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타자들의 반격'을 꼽는다. 작년 부진했던 장타자들이 타격 자세를 바꾸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안경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한때 타자들 사이에서 홈런을 노리고 올려치는 스윙이 유행이었는데, 그런 타자들이 작년 공인구 때문에 애를 먹었다"며 "올 시즌은 선수들의 스윙 자세가 바뀐 게 눈에 띈다"고 했다. 2018년 팀 홈런 최하위(143개)였던 NC가 다운스윙을 강조하면서 작년 팀 홈런 1위(128개)로 올라선 사례도 각 팀에 영향을 줬다.

한화 오선진이 8일 키움과의 고척 원정 경기에서 7회초 3점 홈런을 치는 모습. 이틀 뒤인 10일에는 잠실(KT-두산)에서 홈런 6개가 나오는 등 5경기에서 17개의 대포가 터졌다. 5경기 기준으로 하루에 17개의 홈런이 기록된 것은 2018년 10월 6일 이후 처음이었다.

각팀 코칭스태프가 내놓은 기술적인 해결책도 도움이 됐다. 작년 6홈런에 그쳤던 이정후는 지난 8일과 9일 두 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다.

키움 관계자는 "이정후가 타격 포인트를 살짝 앞으로 당기면서 타구 속도가 올라갔다"고 했다.

다소 따뜻한 날씨도 타자 강세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안경현 위원은 "시즌 초 타자들이 수비할 때 추위를 느끼면서 몸이 덜 풀리곤 한다"며 "올해는 날이 풀린 뒤 시즌을 시작해 타자들이 자기 스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준비 덜 된 불펜

반면 투수들은 시즌 전 '예년과 똑같이 준비하겠다'는 경우가 많았다. 또 코로나가 터지며 개막 일정이 불투명해지는 바람에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안치용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투수들이 구속과 구위가 정상 궤도로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을 맞이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올 시즌 초반엔 선발보다 구원 투수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주말 3연전 경기 후반 대량 득점과 역전이 여럿 나오며 구원진 평균자책점이 8점 이상인 팀이 두산(9.17), SK(9.00), KIA(8.18), KT(8.10) 등 네 팀이나 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서용빈 SPOTV 해설위원은 "타자들이 치는 모습을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타격 포인트를 앞으로 당기기만 해서 쉽게 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투수들이 제 궤도에 오른 시점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