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럽발(發)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 감염 규모가 닷새 만에 최소 94명으로 늘어났다. 클럽을 다녀온 손자에게 80대 할머니가 감염되는 등 코로나 감염에 취약한 고령층으로 2차 감염이 번졌다.

질병관리본부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현재 이태원 클럽 방문자와 접촉자 등 94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수도권 직격탄…23명은 2차 감염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 94명 중 87명(92.5%)은 서울(59명)·경기(21명)·인천(7명) 등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었다. 국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약 2600만명이 살고 있는 수도권이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 감염으로 위험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시 분주해진 선별 진료소 - 11일 서울 관악구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의 ‘워킹스루’(도보 이동형) 선별 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감염 발생으로 선별 진료소를 찾는 시민이 늘고 있다.

이날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 중 최소 23명(24.4%)은 이태원에 다녀오지 않았는데 확진된 사례였다. 하루 전 11명에서 2배 이상 늘었다. 전체 확진자 중 무증상 비율이 세 명 중 한 명(34.9%)으로 높은데 이들이 주변 지인을 2차 감염시킨 사례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84세 여성은 지난 7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딸 부부, 외손자와 함께 호텔에서 식사한 뒤 코로나로 확진됐다.

서울 강남구의 한 디자인 회사에선 이날까지 확진자 7명이 나왔다. 서울 중랑구 확진자(28)가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뒤 직장 동료 6명에게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이날 "13일까지는 발병이 많을 것"이라며 "이번 주가 고비"라고 했다.

◇수도권·클럽·젊은 층…추적 어려워

전문가들은 수도권 집단 감염 우려가 이번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병율(전 질병관리본부장) 차의과대 교수는 "클럽은 밀폐된 지하 공간에서 격렬한 활동과 환호 등으로 공기 중 바이러스 농도가 높아 전파 가능성이 크다"며 "활동량이 많은 젊은 남성이 무증상 상태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직장을 다니는 등 확산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이날 정오 기준 확진자 86명 중 30세 미만 확진자가 전체의 70.1%(61명)에 달했다.

그러나 유흥시설 특성상 출입자 명부 작성이 부실해 이용객과 접촉자 확인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밤부터 지난 6일 새벽까지 이태원 5개 클럽을 방문한 사람을 5517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절반이 넘는 3112명(56.4%)은 출입 명부에 허위로 전화번호를 기재해 연락이 닿고 있지 않다.

반면 총 166명이 확진돼 그간 수도권 최대 집단 감염이었던 서울 구로구 콜센터 사례에서 방역 당국은 당시 콜센터 입주 빌딩의 근무자와 방문자 등 총 1143명 중 1027명에 대한 진단 검사를 6일 만에 마쳤다.

정부가 추적 중인 5개 클럽이 아닌 다른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된 사례도 나왔다. 11일 서대문구는 "지난 2일 이태원 클럽 '메이드'를 다녀온 20세 남성이 확진됐다"고 했다. 이 클럽은 남녀 모두 찾는 인기가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지난 2~10일 대량 전파 가능성이 있다. 기존 5개 클럽과 400m 떨어져 있는데 이태원 클럽 감염 첫 사례인 용인 확진자(29)는 이곳을 찾지 않아 감염 경로 규명이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1~2명이 모두에게 전파했다고는 판단하지 않는다"며 "기존에 소수 감염자가 있던 상태에서 연휴 기간 클럽이 운영을 재개하며 증폭됐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익명 검사 도입"

서울지방경찰청은 11일부터 2162명에 달하는 경찰 인력을 투입해 클럽 출입자의 신원과 소재를 확인하기로 했다. 카드 사용 내역과 휴대폰 기지국 접속자 명단, 폐쇄회로 TV 등을 확보해 출입자를 추적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이날 "연휴 기간 이태원 유흥시설에 다녀갔던 사람에 대해 '즉각 검사 이행 명령'을 내린다"며 "이태원 클럽에 다녀갔는데 검사를 받지 않은 것이 밝혀지면 2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했다. 신원 노출을 꺼리는 성 소수자, 관련 클럽 방문으로 인한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사람들로 인해 신속한 진단 검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이날부터 '익명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본인이 원하면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용산 01' 같은 보건소별 번호를 부여한 뒤 무료로 진단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