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제1차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참석의원이 안건논의를 하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벤처기업협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3개 단체는 오늘(1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규제 법안의 통과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이다. 비판 성명을 발표한다. 대상은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n번방 방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 규제 법안이다.

3개 단체에는 네이버와 같은 대형 인터넷기업에서부터 우아한형제들, 토스, 직방 등 스타트업에 이르는 국내 벤처 기업들이 거의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문제삼는 법안은 ‘n번방 방지법’, ‘넷플릭스 무임승차 규제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과 ‘데이터 센터·클라우드 규제법(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 3가지다.

이들 3개 단체는 앞서 11일 개정안에 대한 질의서를 정부에 보냈다. 여기서 “제도의 변경에 따라 국민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이 미칠 수 있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공청회 등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급하게 처리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 법안은 다음주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 여부가 결정난다. 이날 본회의는 이번 국회 마지막이다. 다음 회기로 넘어가면 개정안은 모두 자동 폐기된다.

대체 이들은 왜 반대하는 걸까. 요지는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헛점투성이여서 실제 적용되면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면에는 과도한 정부 규제를 피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넷플릭스 무임승차 규제법, 뭐가 문제야?

먼저 논란은 ‘망 사용료’다. 넷플릭스와 같은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의 인터넷망을 공짜로 쓰는게 문제라는 지적에 따라, 이에 ‘의무’를 부과하려는 개정안 내용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지난 2~3년새 국내서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트래픽도 급증했다.

작년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국내 LTE 데이터 사용량 상위 열 개 서비스를 분석한 결과, 해외 기업 다섯 곳이 67.5%의 트래픽을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예컨대 국내 고속도로가 10차선이라면, 해외 기업이 6~7차선을 모두 쓰면서 비용은 안 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나머지 3~4차선을 쓰는 수천~수만개의 국내 기업은 여러 명목으로 통신업체에 망 이용 대가를 지불한다. 불합리를 바로 잡겠다는게 개정안이다. 한때 네이버는 국회에 나와 “구글 등 외국계 기업과 국내 기업간 이런 역차별을 바로 잡아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정작 법안 통과가 눈앞인데 네이버 등 국내 인터넷 기업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왜 일까. ‘망 사용료’ 논란을 이해하려면 ‘망 중립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한다. 망 중립성이란 인터넷망을 일종의 공공재(公共財)로 보고, 누구나 차별 없이 동등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컨대 2000년 전후에 당시로선 벤처기업이었던 구글이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거대 통신업체인 미국 버라이즌과 같은 검색 서비스를 제공할때, 이 두 서비스는 동등하게 소비자에게 연결돼야한다는것이다. 만약 버라이즌이 자사의 인터넷 가입자에게 자사 서비스만 빠르게 접속되고, 구글은 느리게 만든다면 소비자의 편의가 침해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기업들은 이후 망중립성을 확대 해석했다. 이용자가 이미 통신업체에 망사용료를 냈기 때문에 만약 통신업체가 구글과 같은 업체에도 돈을 받으면, ‘같은 제품으로 두번 돈을 버는’ 형태라는 것이다. 즉, 구글 등은 무료로 망을 써야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에 따라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망사용료를 안 냈다. 반면 국내 업체들은 직접 대형컴퓨터를 설치하고, 여기와 연결하는 전용회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수십억~수백억대 비용을 써야한다. 크게 봐서 망 이용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예전에 네이버가 ‘구글과의 역차별 해소’를 주장했던 대목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서비스 안정성 유지 의무’를 콘텐츠 업체에 지우는 형태다. 네이버 등 국내 인터넷업체나 스타트업 입장에선 “결국 통신업체가 이 규정을 내세워, 국내 업체에서 받는 망 이용 대가를 더 늘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작 외국 기업들은 끝까지 안내고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는 현재 KT 등 통신업체와 계약 관계다. 내용은 외부 비공개이지만, 업계에선 “KT가 한 푼도 안받고 유튜브에 전용회선 등 관련 인프라를 제공하는 내용”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KT가 적극적으로 반론을 펴지 않는다. 넷플릭스도 LG유플러스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것도 “각종 명목을 주고 받는 형태로, 결국 넷플릭스의 망 이용 무임 승차를 허용하는 계약”일 것으로 추정된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개정안이지만, 현실에선 국내 인터넷 기업에만 짐을 더 지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게 인터넷 업계의 우려다. 반면 통신업계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외국계에도 당연히 망 사용료를 받을 것이고, 국내 업계에 추가 비용은 가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통신업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트래픽이 늘어나면 결국 망 구축에 돈을 써야하는데, 우리가 땅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그 비용은 이용자에게 돌아간다”며 “인터넷망에서 돈을 버는 외국계 기업들도 이제 합당한 대가를 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n번방 방지법, ‘국민 메신저 사찰법’으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던 n번방 사태의 재발(再發)을 막기 위해 마련된 ‘n번방 방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통신비밀 침해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 법은 인터넷 사업자에게 불법 음란물을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하는 등 유통 방지 조치 의무를 지우는게 핵심이다. 이를 어긴 사업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했다. 취지는 좋지만, 인터넷 사업자들이 개인의 정보를 어디까지 들여다 봐야하는지 명시되지 않아 혼란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인기협·벤기협·코스포가 11일 정부에 전달한 질의서에는 “앞으로 사업자가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통해 모든 이용자의 게시물 및 콘텐츠(예:이메일, 개인 메모장, 클라우드, 메신저 등) 전체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우려가 맞습니까?”라는 질문이 포함됐다. 지금까지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블로그의 비밀 메모장과 같은 개인적인 공간의 데이터는 모두 암호화된 채로 전송·저장돼 사업자가 마음대로 들여다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데이터도 모두 열어서 상시 검열을 해야만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개인간 대화의 사찰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중국 대표 메신저인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의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범칙어’를 선정해 AI가 일반 이용자의 대화를 검열토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올 초 코로나가 중국에서 급속 확산할 당시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개인 단체 채팅방이 갑자기 운영이 정지되거나, 개인 계정이 사용 중지되는 사례가 쏟아졌다. 인터넷 업계에서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 민간 사찰에 악용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 해외기업들은 법에서 자유로워 ‘역차별’을 일으킨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이 법을 국내외 사업자에게 일괄 적용한다 했지만, 해외 기업들이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 할 방법은 뚜렷하지 않은 상태다. n번방 사태는 주로 텔레그램·페이스북과 같은 해외 인터넷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일어났는데, 해외 기업을 통제하지 못하는 법은 제2의 n번방 사태를 막는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는 “텔레그램의 경우, 국내 n번방 수사 협조 요청에 끝내 묵묵부답인데도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라며 “결국 국내 인터넷 기업들만 형사처벌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보호라더니…재산 침해 소지?

데이터 센터 내부 모습.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에 데이터 보호 의무를 포함시키자는 개정안도 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법은 한국에 데이터센터(IDC)를 구축한 사업자라면, 통신재난관리대상으로 지정돼 데이터보호 의무를 준수해야한다는게 핵심이다. 원래 지상파 방송사와 주요 통신사에 집중된 기존 재난관리 대책을 클라우드 서비스 등 데이터 사업자로 확대한 것이다.

얼핏 보면 문제가 될게 없는 법이다. 기본적으로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은 ‘진흥법’이다. 이 법은 방송통신산업을 키우기 위한 여러가지 혜택을 제시하며 몇가지 책임을 부과했는데, 정기적인 보고서와 자료 제출의 의무와 재난관리 의무등이다. 예컨대 산불·지진 등 재난이 일어났을 때, 지상파 방송사는 의무적으로 재난 방송을 해야한다는 것이 이 의무에 속한다. 이들 기업이 정부에 자료를 올리고, 국가 재난 해결에 일정 의무를 갖는 이유는 사실 딱 하나, 국가 재산인 ‘주파수’를 사용해 사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다르다. 땅을 사거나 임대하고, 데이터를 저장할 서버를 설치하고, 전기료 등을 내면서 운영하는 민간 사업이다. 사실상 데이터센터에 있는 장비와 데이터는 모두 기업의 사적 재산인데, 국가가 이에 대해 정기적인 보고와 자료 제출·재난 보호 의무등을 지라는 것은 재산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는 여기서도 나타난다. 국내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은 사실상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Azure), 구글 클라우드가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과 경쟁하는 국내기업은 네이버 클라우드가 전부다. 한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외국 기업들이 재난관리 의무나 보고서·자료 제출의 의무를 다 하지 않는다고 이들을 처벌하겠다고 나서면, 이들은 손쉽게 서버를 해외로 옮겨버리고 규제에서 벗어날 것”이라며 “결국 국내 기업만 추가 규제에 시달리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