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검체 5만개를 비밀리에 비행기에 실어 미국으로 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영국 내에서 검사 역량을 갖추지 못해 미국에 대신 확인해달라고 의뢰한 것이다.

9일(현지 시각)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날 영국 보건 당국은 며칠 전 런던 북부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전세기를 통해 미국 남부의 한 대학 연구소로 코로나 검체 5만개를 보냈다고 시인했다. 영국 정부는 맷 행콕 보건부 장관이 제시한 '하루 10만명 검사'라는 목표를 9일까지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 평균 9만6000건 안팎의 검사밖에 실시하지 못한 데다, 이마저도 검사 결과 확인을 맡은 민간 연구소 중 한 곳에서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내부 문제가 발생해 결과 확인이 지연되고 있다. 그러자 미국에 의뢰하고 나서 쉬쉬했지만 뒤늦게 언론 보도로 관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영국에서는 9일까지 유럽에서 가장 많은 3만1587명의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5월 말까지 하루 20만건의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하루 10만건의 검사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럽에서는 영국이 몰래 검체를 미국에 보낸 것을 두고 지난 1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단행했다는 점을 의식해 일부러 유럽 국가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독일 등 가까운 유럽 국가들을 제쳐두고 굳이 멀리 떨어진 미국에 검사를 부탁한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존슨 총리와 행콕 장관이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존슨이 보건 당국의 코로나 대처가 미흡하다고 질책하고 있고, 행콕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간 데일리미러는 "행콕이 총리에게 '나에게 휴식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주변에는 '나는 덤으로 장관직을 수행하는 중'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보도했다. 보건장관직을 그만둘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는 얘기다.

한편 유럽에서는 스위스가 11일 프랑스·이탈리아와 맞댄 국경을 대폭 개방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경 통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며칠 내로 회원국들에 EU 내에서는 국경을 재개방하는 방안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