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이 그리게 하고 직접 글을 지은 ‘제갈무후도’. 제갈량과 유비의 만남을 현신과 명군의 만남으로 묘사해 신하들에게 충심을 독려했다.

1674년 8월, 부왕 현종의 서거로 열네 살 숙종이 왕위에 올랐다. 어린 왕이 마주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조정은 붕당 간 대립이 첨예했고, 두 차례의 왜란과 호란으로 사회는 피폐해져 있었다. 어머니 명성왕후가 대리청정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였지만, 숙종은 즉위 직후부터 거침없이 왕권을 행사해 나갔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숙종 서거 3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테마전 '숙종대왕 호시절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조선 제19대 왕 숙종(재위 1674~1720년)을 조명한다.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숙종은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이에서 흔들리고 궁중정치에 휘둘리는 유약한 임금으로 비쳤다. 하지만 숙종은 타고난 정통성을 바탕으로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절대군주였다. 현종과 명성왕후의 유일한 아들로 명백한 왕위 계승자였고,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강한 국왕'의 면모는 영조와 정조 등 후대 국왕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숙종이 당쟁의 폐해를 경계하며 쓴 '계붕당시(戒朋黨詩)'를 적은 현판, 군주에 대한 신하의 충심을 강조한 그림 '제갈무후도' 등을 볼 수 있다.

그는 특히 조선 창업 군주인 태조의 업적을 강조하며 계승자로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 했다. 태조가 타던 말 여덟 마리를 그린 화첩 '팔준도첩'이 전시장에 나왔다. 숙종은 세종대 안견이 그린 팔준도가 소실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새로 그리게 하고, 직접 글을 지어 태조의 업적을 되새겼다.

사회·경제적 개혁을 통해 조선 후기 중흥의 토대를 마련한 치적도 조명한다. 숙종은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시행했고, 화폐 상평통보를 발행해 유통했으며, 북한산성을 축조하는 등 국방 시설과 군사 체제를 정비했다. 김재은 학예연구사는 "19세기 한글 소설이나 구전 설화는 숙종 시대를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했던 호시절로 묘사한다"며 "대중적으로 알려진 숙종이 아닌 '강력한 국왕' 숙종의 면모를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6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