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출범 3주년 특별 연설에서 "문제는 경제"라면서 "경제 위기 극복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 "한국형 실업부조를 조속히 시행하겠다"는 등 고용 안전망 구축 청사진을 제시했고 '한국판 뉴딜' 구상도 밝혔다. "지금은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상황 인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3차 추경'을 공식화하면서도 재정 적자 악화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밝은 빛'만 내세우고 그 빛이 만든 '그림자'에 대해선 모른 척해 온 것이 지난 3년이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전 올해 예산을 편성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복지 확대를 명분으로 경제성장률의 네 배에 달하는 증가율(9.1%)로 512조원 수퍼 예산을 편성했다. 새해 들어서도 투자, 고용, 수출 등 각종 경제지표가 좋지 않자 예산 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예산을 더 늘리는 조기 추경을 추진했다. 결국 코로나를 명분 삼아 3~4월에 24조원 규모의 1·2차 추경을 잇따라 편성했다. 이에 따라 올해 찍어야 할 적자 국채 규모가 무려 74조원대로 늘었다. 작년 적자 국채 발행액의 2배가 넘고, 재작년 적자 국채 발행액의 5배에 이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3차 추경은 최소 3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직자 93만명에게 150만원 지급 등 각종 실업 대책에만 10조원가량이 들어간다. 정부 안팎에선 올해 세수 감소분이 20조원 이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3차 추경은 전액 적자 국채로 조달해야 할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적자 국채 총액은 104조원으로 늘어난다. 적자 국채 발행액을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받는 전국 가구 수(2171만가구)로 나누면 가구당 479만원에 이른다. 정부가 가구당 100만원씩 나눠주면서 그것의 5배에 가까운 새 빚을 함께 떠안기는 꼴이다. 작년엔 가구당 국가 부채가 3360만원이었는데, 올 한 해에 가구당 빚 부담액이 14%나 늘어난다. 국민에게 쓰는 선심의 몇 배나 되는 빚이 뒤에서 쌓이고 있다. 국민이 언젠가는 갚아야만 하는 돈이다.

정부와 여당은 "세계 최고 재정건전성을 갖고 있어 빚을 더 늘려도 괜찮다" "국가부채비율이 60% 선을 넘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지만 정말 그럴까.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피치가 "국가부채비율이 2023년 46%까지 높아지면 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 추세대로면 올해 국가부채비율이 45% 선을 넘게 된다.

국가부채비율이 224%에 달해 최악의 재정 부실 국가로 꼽히는 일본의 경우, 국가 예산 30%가량을 빚을 내 조달하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올해 우리 정부가 적자 국채를 100조원 이상 찍으면 우리나라도 예산의 20%가량을 빚으로 조달하는 꼴이 된다. 일본은 국채 이자 갚는 데만 예산의 8%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존 국채 빚 부담도 결코 작지 않다. 올해 정부가 지출하는 국가부채 이자만 18조9000억원에 이른다. 국민 1인당 37만원씩 부담하는 셈이다. 올해 적자 국채를 100조원 이상 발행하면 내년부턴 연간 이자 지출액만 20조원을 웃돌게 된다. 20조면 얼마 전 우리나라 국방 예산이다.

일본은 엔화가 국제통화인 데다 해외 순자산이 3조달러가 넘어 기형적 예산 구조를 감당할 수 있다. 게다가 일본 국채는 절반가량을 중앙은행이 인수하기 때문에 수요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면 우리나라 국채는 은행·보험사가 대부분 소화하며 외국인도 16%를 갖고 있다. 너무 빠른 국가부채 증가 속도 탓에 국가 신용등급에 적신호가 켜지면 남유럽 재정 위기 때 그리스처럼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국채 인수자를 찾기 어렵게 될 수 있다. 그리스는 유럽중앙은행(ECB)이란 보호막이라도 있었지만, 우리는 곧바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적자 국채 남발과 국가부채 급증은 먼 산의 불로 알았는데 이제 우리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