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하루 세끼 밥을 지어 먹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구성도 단순하고 출연진도 단출하지만 묘한 편안함이 있어 몇 해째 챙겨 보는 중인데, 바로 이 프로그램에 막내 격으로 등장하는 배우가 있다. 그는 첫 등장 땐 뭘 할지 몰라 어리바리하더니, 이젠 수제비만 끓여도 주머니에서 양념을 꺼내는 눈치 100단 보조 요리사로 성장했다. 몇 년 만에 속칭 '짬'이 생긴 것이다.

흔히 '경험치'를 뜻하는 은어 '짬'은, 다른 뜻도 많겠지만 방송 현장에선 '노련함'을 가리킬 때 주로 쓰인다. 특히 매 순간, 매번 다른 위기가 찾아오는 생방송 중에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찰나의 판단, 즉 '짬'이 방송 사고를 막기도 한다.

지금은 영상을 모두 디지털로 전송하지만, 예전엔 VCR 테이프로 뉴스 부조정실에서 송출했다. 근데 문제는 가끔 편집이 늦어져 이 테이프가 지각한다는 것이다. 뉴스는 이미 시작했는데, 테이프는 오지 않고…. PD 속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테이프를 기다릴 것이냐, 포기하고 방송 사고를 낼 것이냐.

이런 기로의 순간 '짬'이 발휘된다. 먼저 편집실에 전화를 걸어 작업이 어느 정도 됐는지 체크하고, 만약 테이프가 출발했다면 넘어지지 않고 달려올 때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본다. 물론 이때는 부조정실에 도착해서 VCR에 테이프를 넣고, 스탠바이시키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만약 그 계산상 '가능하겠다' 판단되면 그대로 뉴스를 진행시켜 사고를 막는 것이다. "내 '짬'이 얼만데" 스스로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다.

기술이 좋아진 요즘에도 '짬'은 필요하다. 가령 이동식 중계 장비인 '백팩'은 통신 상황이 화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 때문에 야외나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선 종종 연결이 끊기는데, 이때 PD의 '짬'이 필요하다. 스탠바이 화면 상태만 보고도 생방송이 가능할지 미리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안 되겠다 싶으면 지체 없이 전화 연결로 돌려야만 방송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 제작 현장은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작 공작소'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라도 방송 사고가 나면 모두 허사가 된다. 도전 정신만큼이나 노련한 '짬'이 적절히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