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백수린·강화길·손보미·최은미·손원평 지음 다산책방|240쪽|1만4800원

예전보다 영화나 TV, 유튜브에서 할머니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나이 칠십에 유튜버가 된 박막례 할머니는 구글·유튜브 CEO까지 만나며 '코리아 그랜마'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남 눈치 보지 않고 내뱉는 할머니의 추임새 '옘병!'에 열광했고, '인생은 언제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여'처럼 툭툭 뱉는 말이 명언이 됐다. 최근 호평받은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도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의 대사가 많은 이에게 울림을 줬다. "난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하지." 이런 할머니들을 보면서 우리는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여섯 소설가가 낸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도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한 시대를 살아낸 할머니들이 등장한다. 문단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소설가 윤성희·백수린·강화길·손보미·최은미·손원평이 할머니에 대한 소설 여섯 편을 썼다. 우리가 돌아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들이다. 오정희 소설가는 "이 작품들은 노년에 대한 통념과 편견을 깨뜨리고 (…) 삶의 불가해함과 인간 존재라는 신비를, 한 세상을 건너가면서 겪고 감당했던 모든 것들의 곰삭은 향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고 평했다. 윤성희의 소설 '어제 꾼 꿈'의 주인공 '나'는 다정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하는 중년 여성이다. '나'는 더 이상 죽은 남편의 제사상을 차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제사 전날 밤이면 항상 꿈에 찾아오던 남편이 이제 딸의 꿈에, 아들의 꿈에, 여동생의 꿈에 나타난다. '나'는 허공에다 대고 남편에게 볼멘소리한다. "섭섭해하지 마. 이젠 내 밥 챙기기도 귀찮으니까." 각자가 꾼 꿈 이야기와 함께 오랜 시간 품고 있던 가족의 상처가 드러난다.

6명의 작가가 쓴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는 우리 곁에 있지만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했던 할머니들을 다정한 목소리로 불러낸다.

할머니와 손주의 관계는 종종 부모 자식보다 애틋하다. 강화길의 '선베드'는 암에 걸린 친구와 함께 요양원에 입원한 할머니를 방문하는 이야기다. '나'는 자신을 길러줬던 할머니를 폐허가 된 구도심의 요양원에 맡기고 죄책감을 느낀다.

운동이 부족한 노인들의 일광욕 시간, 할머니는 다른 노인들과 나란히 앉아 햇볕을 쬔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손녀의 손에 든 과자를 뺏어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나'는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을 손녀를 늘 걱정하던 할머니가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는 고독한 할머니에게 찾아온 사랑을 아름답게 그린다. 손주 육아를 위해 먼 이국 땅 프랑스까지 날아온 난실. 매일 창문을 열어놓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웃집 할아버지 브뤼니에씨와 가까워진다.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틀어 놓고, 사전을 짚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는 사랑의 달콤함과 고통을 함께 느낀다.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베스트셀러 소설 '아몬드'를 쓴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은 지금의 20대가 노년이 됐을 미래 사회를 서늘하게 그린다. 심각한 저출산으로 인해 정부는 적극적인 이민자 수용 정책을 펼치고 한국은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된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은 A부터 F까지 등급이 매겨진 시설에 수용된다. 미래의 노인들은 한때 자신이 내뱉었던 말들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청년 이민자들에게 그대로 되돌려받는다. "이 시대의 노인들이야말로 가장 많은 걸 누린 사람들이란 건 분명해요. 굴레도 속박도 없이 맘껏 즐기며 살았잖아요. (…) 모든 건 그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생긴 일이에요."

여섯 소설가가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할머니는 때론 다정하고, 때론 서글프다. 누군가가 떠올린 할머니를 들여다보는 일은 “과거와의 연결이면서 우리의 미래를 알아차리는 과정이 되기도 할 것”(황예인 문학평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