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년마다 발표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기본 틀이다. 원래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지난해 말 확정됐어야 하지만 일정이 늦춰졌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8일 발표된 초안을 토대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가 최종 확정할 예정으로, 올해부터 2034년까지 15년간 에너지 수급 전망과 발전 설비 계획 등을 담게 된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워킹그룹 총괄분과위원회 위원장인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이날 "원전의 점진적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정책적 틀을 유지하면서 석탄발전 감축 등 친환경 발전 전환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이번 계획을 검토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도입된 탈(脫)원전 정책 기조가 이어지면서 오는 2034년 발전량 기준으로 신재생에너지 비중(26.3%)이 원전(23.6%)을 넘어설 전망이다. 2017년 발표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신규 원전 6기 건설 중단과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금지로 30%에 달했던 원전 비중을 2030년 23.9%로 낮추기로 했지만 여전히 신재생에너지(20%)보다는 높았다. 하지만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이 순서마저 바뀔 것으로 보인다.

좁아진 석탄 발전의 입지도 눈에 띈다. 2034년까지 가동 후 30년이 지난 모든 석탄 발전기는 폐쇄될 예정이다. 현재 60기(건설 중 포함)인 석탄 발전 가운데 30기가 문을 닫는 것이다. 대신 폐기된 석탄 발전기 중 24기는 LNG 발전기로 전환할 예정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발전 단가가 비싼 신재생에너지와 LNG 발전을 확대할 경우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탈원전 정책이 지속될 경우 전기요금이 현재 대비 2030년 23%, 2040년 38% 인상될 것으로 예측했다. 전기요금이 오름에 따라 국민 부담은 2030년까지 약 8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전기 요금 인상 압박과 관련해 총괄분과위원회는 "이번 전력수급기본계획 논의 땐 전기료와 관련해 따로 검토하지 않았다"며 "추후 별도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신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발전량이 달라져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금은 저유가 시대라 당장은 LNG 연료비 부담이 적어 보일 수 있지만 중동 정세에 따라 언제 또 오를지 알 수 없다"며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 가능한 원전을 제쳐놓고 전량 수입에 의존해 수급 안정성이 떨어지는 LNG 비중을 확대하는 건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 석탄 발전보다는 낫지만 LNG도 상당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발전 계획의 기초가 되는 전력 수요 예측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발표된 9차 계획 초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2034년까지 전력 수요는 연평균 1%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8차 계획 때 예측했던 평균 전력 수요 증가율(1.3%)보다 0.3%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8차 계획 때에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를 만들기 위해 전력 수요 증가율을 낮췄다는 지적이 나왔었는데 그보다도 증가율 전망치를 내린 것이다. 총괄분과위원회는 8차 계획 때보다 평균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4%에서 2.1%로 내려갔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센터 등 전력 사용이 큰 산업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며 "앞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3년 전과 비교해 증가 폭이 줄어든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