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30석 규모의 한식집을 운영하는 서모(45)씨는 "5월 들어 점심 장사는 그럭저럭 되는데 저녁엔 술 손님이 없어 한두 테이블 채우기도 어렵다"고 했다. 서씨는 "코로나 사태가 끝난다 해도 저녁 장사는 접어야 할 것 같아 월세 더 싼 가게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6일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을 생활 방역으로 전환했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코로나 이전으로 원상복귀는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 이후 가계와 기업 모두 지출을 줄이면서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제조업 생산 감소로 이어져 경제 전반이 쪼그라드는 악순환에 대한 우려다. 소비와 투자가 과거보다 위축돼 10%가 사라지는 '90% 경제'가 새로운 규범(New Normal)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 발발 후 처음 우한(武漢)을 방문한 3월 10일을 기점으로 가장 먼저 경제활동을 재개한 중국은 두 달이 지나도 좀처럼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선 '보복성 저축'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GDP는 약 87조달러인데 이 중 10%(8조7000억달러)가 사라진다면 한국 GDP(1조6300억달러) 5년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올해 세계 GDP가 최대 9조1700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연휴 끝나니 제주 항공권 다시 1만원

국내 유통업계는 어린이날까지 이어진 '황금연휴'가 소비 심리 회복에 불을 지피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연휴 때 10만원대에도 사기 어려웠던 서울~제주 항공권은 주말 기준(5월 9~10일) 편도 1만원대 항공권이 다시 등장했다. 특급 호텔을 제외한 제주도 내 숙박 시설 예약률은 20% 선에 그치고 있다.

연휴 끝나니 다시 썰렁해진 김포공항 - 지난달 30일 여행객으로 붐비던(위 사진)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가 8일 오후 언제 그랬냐는 듯 썰렁하기만 하다. 어린이날까지 이어진 엿새간의 연휴가 위축된 내수 경기 회복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유통업계와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국 영화관의 하루 평균 관객은 연휴 효과로 5월 들어 6만3916명으로 4월 평균(3만2419명)의 배로 늘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전인 1월과 비교하면 12% 수준에 불과하다. 롯데백화점은 4월 말~5월 초 매출이 작년보다 3% 증가했지만, 매출 비중이 큰 남성·여성 정장 판매는 여전히 부진(전년 대비 30% 감소)하다. 경기도 안양에서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는 신모(38)씨는 "1주일 전부터 확실히 유동 인구가 늘었지만, 가게 매상은 전혀 안 늘었다"고 했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온라인 쇼핑몰로 이탈한 고객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코로나로 줄어든 매출을 복구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냉랭한 中 소비 심리 "쓸 돈이 없다"

베이징일보는 닷새간의 노동절(5월 1~5일) 연휴 직후 "요식업·여행업·백화점 등에서 기대했던 폭발적인 소비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인터넷 매체 왕이닷컴은 "(코로나 사태로) 시민 손에 돈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앞으로 '보복성 소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 근교 인기 여행지 '옌치후(雁栖湖)'에는 연휴 첫날 방문객이 약 50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중국 문화여유부에 따르면, 연휴 기간 중국 전역 여행객은 총 1억1500만명으로 예년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연휴 때 여행소비액은 475억6000만위안(약 8조2000억원)으로 연휴 기간이 하루 짧았던 작년 노동절 연휴(1176억7000만위안)보다 60% 감소했다.

중국인민은행에 따르면 1분기 가계 예금은 작년보다 6.6% 증가했다. 중국 봉황망은 "즉각적인 소비보다 위기에 대응할 수 있게 여유 자금을 마련하려는 심리가 소비를 억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보다 저축, 투자 대신 리스크 관리

전문가들은 '90% 경제'의 주요 원인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에 대한 불확실성,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에 대한 회의, '언택트' 비즈니스의 반대급부로 오프라인 경제의 몰락 등을 꼽는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비대면 서비스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전통 산업은 코로나로 잃어버린 10% 이상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고,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전 세계를 무대로 최적의 생산 방식을 찾던 기업들이 비효율을 무릅쓰고 자국으로 유턴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코로나 충격을 경험한 경제 주체들이 불안감 때문에 소비보다는 저축, 투자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치중하면서 이전의 경제 규모를 회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