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기 경제부 기자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지 않으면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 되는 건가요?"

이번에 재난지원금 80만원을 받게 된 회사원 김모(36)씨는 이렇게 되물었다. 소득 하위 70%에게만 지급될 예정이었던 재난지원금의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한 더불어민주당은 "재난지원금을 기부할 수 있다"며 일종의 보완책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기부는 자발적 선택으로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라면서도 자발적으로 기부에 나서줄 것을 독려했다. 하지만 '착한 기부'로 부를 만한 이 정책은 필연적으로 '기부하지 않는 나쁜 사람'을 만들게 된다.

지난달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재난지원금을) 당연히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선 "우리도 기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농협은 "임직원 5000명이 재난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가, '당사자 동의를 다 받지 않았다'는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정부가 공인하는 '착한 사람'이 되려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재난지원금을 다 주고 '알아서 기부하라'고 하는 것은 계층 갈등을 유발하는 나쁜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재난지원금의 경우 기부금이 고용보험 기금의 재원으로 쓰이게 된다. 만약 기부금이 예상보다 적어 고용보험 기금이 부족해지면 기부를 하지 않은 '이기적인 고소득자'에게 화살이 돌아갈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소위 '착한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월 페이스북에 "착한 임대인 운동이 확산되길 바란다"며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하 움직임을 칭찬하자, 정부는 '착한 임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임대료를 내린 건물주에게 소득세·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맹점주들을 지원하는 프랜차이즈 본사는 국책은행 등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착한 프랜차이즈' 지원책을 내놨다. 지난달 27일부터 중소벤처기업부는 자주 찾는 음식점에서 미리 결제를 해두고 재방문을 하자는 착한 선결제 캠페인을 시작했다.

민간에서 스스로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돕겠다고 나서면 모두가 손뼉을 칠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착한 정책'으로 이름 붙인 이벤트에 동참하지 못하면 '나쁜 임대인' '나쁜 프랜차이즈'가 된다. 또한 정책이 충분히 효과를 내지 못하면 정부 잘못이 아니라 여기에 동참하지 않은 '나쁜 사람들' 탓이 된다.

정부 정책은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도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기획재정부 의견대로 소득 상위 30%에게는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고 그 재원으로 고용보험을 직접 지원했으면 됐을 텐데, 착한 기부를 요구하는 집권당과 정부 정책 탓에 올해는 수백만 명의 나쁜 사람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