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게 되고, 전쟁에 휘말리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In love we find out who we want to be. In war we find out who we are).’ 크리스틴 해나의 소설 ‘나이팅게일(The Nightingale)’을 여는 첫 문장입니다. 러브스토리 세 편이 담긴 드라마 ‘비포 더 레인(Before the Rain·사진)’을 여는 첫 자막으로도 손색없을 주제문입니다.

1부 무대는 1990년대 마케도니아. 누명 쓰고 도주한 이슬람교도 소녀를 청년 수도사가 숨겨줍니다. 사랑에 빠진 청년은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수도사 옷을 벗고 함께 도망칩니다. 멀리 못 가 소녀는 폭도에게 살해당합니다. 2부 무대는 런던. 퓰리처상을 탄 전쟁 사진작가 알렉스가 은퇴합니다. 사자(死者)나 죽어가는 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죄스러웠기 때문. 한편 남편과 알렉스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진 편집자 앤이 식당에서 난 테러로 남편을 잃습니다. 알렉스를 애타게 찾는 그녀 연락은 닿질 않습니다.

3부 무대도 마케도니아. 귀향한 알렉스가 옛 연인 한나와 재회하려고 길을 나서는데 기독교도 친척들이 가로막습니다. 알바니아인 한나가 이슬람교도라는 게 이유. 한편 한나 딸이 마케도니아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자 한나가 알렉스에게 간청합니다. "당신 딸처럼 여겨 부디 애를 살려줘." 아뿔싸, 소녀를 구해주려고 나서자 친척들이 알렉스를 쏴버립니다. 소녀는 수도원에 몸을 숨깁니다. 알렉스의 조카가 그녀를 지켜줍니다. 청년 수도사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미래에 울려 퍼지는 과거의 메아리다(What is history? An echo of the past in the future).’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은유입니다. ‘과거의 메아리’란 ‘과거 사건들이 후대(後代)에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탄 이 작품 3부 끝과 1부 처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립니다. 역사가 일깨우는 교훈을 비웃기라도 하듯 종교와 민족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는 장치이지요. 극 중 이 대사가 긴 메아리를 남깁니다. “전쟁은 바이러스와 같아(War is a vi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