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는 중국 부동산 구매자들. photo 바이두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최근 펴낸 ‘영원한 권력은 없다’란 자서전에서 ‘토지공개념’ 탄생 비화를 언급한 바 있다. 책 내용은 이렇다. “박정희 정부 때 건설부 장관을 하던 사람(김재규를 지칭)이 일본 소설 ‘불모지대’를 읽은 후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거기에 소련의 토지국유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그것을 읽고 감격한 장관이 ‘토지공개념’이라는 용어를 들먹이기 시작했고 경제기획원에서 그것을 받아 사용한 것이 토지공개념의 한국적 유래다.”

구(舊)소련식 ‘토지공개념’을 국가 최상위법인 헌법에 못 박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이웃나라인 중국이다. 중국 헌법 제9조와 10조는 토지의 국가 소유를 명시하고 있다. 9조는 “광산, 하천, 삼림, 야산, 초원, 황무지, 갯벌 등 자연자원은 모두 국가 소유다”라고 못 박고 있다. 이어지는 10조 역시 “도시의 토지는 국가 소유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또한 10조는 “국가는 공공이익의 수요를 위해, 법률 규정에 근거해 해당 토지를 징수하거나 징용한 뒤 보상할 수 있다”며 “어떤 조직이나 개인이 침범하거나 매매, 어떤 방식으로든 전매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의 현행 헌법은 ‘개혁개방’을 단행한 직후인 1982년 개정한 수정헌법이 골간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단행한 직후 만든 헌법에서도 ‘토지는 국가 소유’라는 개념은 확고히 유지되고 있다. 하위 법과 조례에서도 토지의 국가 소유 방침은 확고하다. 국유토지사용권 조항을 살펴보면, 거주용지(주택)는 70년, 공업용지(공장)는 50년, 교육(학교)·과학·기술·문화·위생(병원)·체육용지는 50년, 상업·여행·오락용지는 40년으로 사용기한을 못 박고 있다.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인 만큼, 해당 조례로 정해진 기간만큼만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일반 개인이 사는 주택(아파트 포함)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도 주택 구입 시 한국의 ‘등기권리증’에 해당하는 ‘부동산권리증’이 발급된다. 가령 중국 상하이시를 기준으로 ‘부동산권리증’을 살펴보면, 가장 위에는 권리인(구매자)의 이름이 기재되고, 아래에는 지번과 토지 상태가 나온다. 아파트일 경우 거주용지(주택용지)라고 적혀 있고 가장 아래쪽에는 70년의 사용기한이 연월일까지 명시돼 있다.

70년의 거주용지 사용기한은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어올릴 목적으로 지방정부로부터 해당 토지를 취득한 연도부터 계산한다. 가령 건설사가 아파트 건설을 목적으로 2003년에 토지를 취득해서 2007년 준공한 뒤, 2008년부터 주민들을 입주시켰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아파트를 구매한 사람의 토지사용권은 2003년부터 2073년까지 70년간이다. 2008년 새 아파트에 입주했더라도 실제 토지사용권은 65년간인 셈이다. 만약 이 아파트를 2020년에 구입한 사람이 있다면, 잔여 토지사용권은 53년에 불과한 셈이다.

중국인 누구도 믿지 않는 토지공개념

원칙적으로 봤을 때 해당 아파트를 2020년에 구매해 입주한 사람은 토지사용권이 만료되는 2073년에는 자신과 가족들이 53년간 살던 집을 비우고 나가야 한다. 2073년부터는 토지사용권을 재회수한 중국 정부가 해당 토지에 있는 아파트를 통째로 철거하고 공항이나 기차역을 짓더라도 항의할 법적 근거가 없다. ‘부동산권리증’에 적혀 있는 해당 토지의 사용권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중국 헌법상 중국의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이고, 개인은 토지의 사용권자에 불과하다. 이것이 중국에서 말하는 ‘토지공개념’의 실체다.

그렇다면 실제로 중국 사람들은 헌법에 적시된 ‘토지공개념’을 의식하고 부동산에 투자할까.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40년이나 70년 후에 정부가 회수해갈 국가 소유 토지에 막대한 사비를 투자해 아파트를 구매하고, 높은 빌딩과 호텔을 지어올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국가 소유’ 토지 위에 아파트와 초고층빌딩, 특급호텔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업용 초고층빌딩 10개 중 4개가 중국에 있다. 이는 중국인 중 어느 누구도 중국 헌법에 있는 ‘토지공개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변호사 바이(柏)모씨는 “중국 사람들은 사용기한이 만료되더라도 개인이 수십 년간 살던 아파트를 정부가 회수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연히 중국인들이 아파트를 구매할 때도 ‘토지사용권’은 대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물론 토지사용권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새 아파트가 한 번 이상 손바꿈을 한 아파트(얼쇼우팡)에 비해 높은 가격이 형성되지만, 이는 보다 편리하고 깨끗한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는 자연적 현상에 더 가깝다.

‘토지공개념’을 채택한 중국은 토지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한국보다 부동산 구매 열기도 뜨겁다. 국내외로 떼지어 몰려다니며 부동산을 구매하는 ‘원저우 차오팡퇀(炒房團·부동산투기단)’처럼, 부동산은 중국인의 가장 현실적 재테크 수단이다. 이로 인해 중국 주요 도시의 아파트 3.3㎡당 매매가는 서울에 못지않다. 중국 최대 부동산 거래포털인 안쥐커(安居客)에 따르면, 중국 1선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중 주택가격이 가장 비싼 베이징의 지난 4월 기준 ㎡당 매매가는 5만8605위안(약 1008만원)에 달했다.

이를 한국식 평(3.3㎡)으로 환산하면 19만3396위안(약 3327만원)에 달한다. KB국민은행 부동산 시세 기준, 서울 평균(2969만원)보다 높고, 강남3구의 막내인 송파구(4238만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물론 베이징에서 가장 비싼 구역인 시청구(西城區)는 ㎡당 약 12만4247위안으로, 평(3.3㎡)으로 환산하면 41만15위안(약 7056만원)에 달한다. 서울은 물론 한국에서 가장 주택가격이 비싸다는 서울 강남구(3.3㎡당 5494만원)를 웃돈다. 구매한 아파트가 속한 토지를 최장 70년밖에 쓸 수 없는데도 이런 수준이다.

‘토지공개념’ 덕분에 부동산을 여러 채 보유한 자산가들이 혜택을 누리는 점도 있다. 개인의 가장 큰 재산을 차지하는 부분이 토지나 주택이기 마련인데, 모든 토지가 명목상 국가 소유이다 보니 ‘재산세’는 물론 주택에 대한 ‘증여세’나 ‘상속세’도 없다. 개인 소유가 아니라 국가 소유 토지를 잠깐 빌려서 사는 것인 만큼 세금을 부과할 근거가 희박하다. 상하이, 충칭 등 일부 지역에서 신규 주택 또는 2주택 이상에 재산세 개념인 ‘부동산세’를 시범 도입한 바 있으나, 전국적 확대 실시는 엄두도 못 낸다.

오히려 한국은 부동산의 사적 소유를 허용하지만, 부동산 거래와 보유의 전 과정에 취득세, 등록세, 양도세, 재산세, 종부세, 증여세, 상속세 등 이중 삼중 과세를 하고 있다. 여기에 농어촌특별세, 지방교육세, 인지세 등 부동산과 전혀 상관없는 세금까지 추가 부담해야 한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한 공산국가 중국보다 훨씬 엄격하다. 토지공개념 도입을 위해 이중 삼중의 부동산 관련 세금부터 폐지할 용의가 있는지 중국은 한국에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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