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對)국민 사과를 둘러싸고 온라인에서는 "해외에서 부러워하는 경제 발전의 상징인 삼성전자가 정치·시민사회 권력에 등 떠밀려 죄인처럼 사과하는 한국 경제 현실이 안타깝다"는 동정론과 함께, "진정성 없는 반성으로 일단 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엇갈렸다. 외신들은 한국 기업 문화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고 평가하며 관심을 보였다. 이 부회장에게 대국민 사과를 권고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7일 회의를 열어 "이 부회장의 답변 발표가 직접적으로 이뤄지고 준법 가치 실천 의지를 표명한 점에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한다"면서도 "지속 가능한 경영 체계의 수립, 노동 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 시민사회의 실질적 신뢰 회복을 위한 실천 방안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조만간 자세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이재용 대국민 사과에 난감한 재계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히자,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 상황이라 삼성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마치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는 게 선(善)이고, 물려주는 게 악(惡)으로 비칠까 봐 난감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한국적 지배 구조와 경영 체제에 대해 무차별적인 비판과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부 좌파 진영의 여론몰이에 반(反)기업 정서가 일방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이 부회장이 준법감시위의 요구를 받아들여 내놓은 반성문이 우리 기업 문화를 바꾸는 정답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7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사옥 앞에서 ‘삼성 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대위’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 등이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날인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준법감시위가 권고한 내용을 모두 받아들여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익명을 요구한 5대 그룹 임원은 "삼성이 경영권 승계 포기를 했으니 다른 그룹도 따라 해야 한다는 식의 '재계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주인 없는 대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여러 차례 봐 왔다"며 "과거 삼성전자가 퀀텀 점프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휴대전화 화형식, 과감한 반도체 투자같이 강력한 오너십으로 가능했던 역사적인 장면을 앞으로 보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 강성 노조의 왜곡된 노사 관계에 대한 반성은 없이 무노조 경영 자체가 '악'이라는 사고만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무노조 경영이 폐기됨에 따라 삼성의 큰 장점 중 하나가 꺾이게 됐다"며 "전 세계적으로 훌륭한 기업 중 무노조 경영을 하는 곳이 많다. 이 부회장 발표는 기업인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우리나라의 불행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외신 "한국 대기업에서 볼 수 없는 이례적인 모습"

외신들도 이 부회장의 발표를 비중 있게 다뤘다. 그동안 한국의 재벌 구조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했던 해외 언론들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는 "한국 대기업에서는 볼 수 없는 이례적인 모습"이라고 평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부회장이 삼성 창업 일가의 마지막 경영진이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선언은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이 부회장의 재수감을 막기 위한 구실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앞으로 전문 경영진이 더 큰 역할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세습 중단 선언은 삼성을 포함한 다른 대기업들도 능력을 인정받는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경영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이 부회장이 3대째 내려오는 승계 구조 종식을 암시했다"며 "오랫동안 한국 재벌은 주주 이익보다 가족의 이익을 더 중시한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 보도는 다소 온도 차가 있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는 부문별로 CEO(최고경영자)를 두고 권한 위임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총수 부재의 단기적인 영향은 적다"면서도 "과감한 투자 전략과 사업 구조의 전환 등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창업가 총수의 판단이 불가결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