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로 떠오르는 수만 개 우산, 사탑을 떠받치는 거대한 깃털, 허공을 비행하는 암석….

초현실이 현실이 된다.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를 첨단 기술로 구현한 '마그리트 특별전'이 9월 13일까지 서울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열린다. 멀티미디어 체험형 전시로, 이탈리아 영상디자인 스튜디오 페이크팩토리가 감독하고 브뤼셀 마그리트 재단이 직접 기획에 참여한 아시아 첫 전시다.

한 관람객이 ‘마그리트 특별전’에 마련된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를 재구성한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미디어아트·증강현실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해 작가의 상상력을 구현한 체험형 전시다.

지붕 위 비처럼 쏟아지는 중절모 차림 신사들('골콩드'), 머리에 천을 뒤집어쓴 채 키스하는 남녀('연인들') 등 무의식의 건너편을 화폭에 옮겨온 르네의 상상력으로 600평 규모 전시장을 꽉 채웠다. 다수의 스크린 회화와 복제화뿐 아니라, 영화광이었던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출연한 영상을 상영하는 '시네마 룸', 작가가 매료됐던 거울을 활용해 가상과 비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미스터리 룸', 관람객 눈·코·입을 자동 인식해 작품 속 얼굴과 즉석 합성해주는 '플레이 마그리트 존', 파이프 담배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이미지의 배반'과 방 하나를 채우는 거대 풋사과 그림 '청취실'을 대형 조형물로 재현한 포토존까지 다채롭다. 개막 열흘만에 관람객 1만명에 도달하며 인사동 명물이 된 이유다.

관객 얼굴을 자동인식해 그림과 합성해주는 코너.

전시장 복도를 따라 마련된 연대기를 통해 어머니의 투신자살과 전쟁과 화풍의 변천 등 작가의 생애를 일별하다 보면, '미러 룸'에 당도하게 된다. 저택의 낮과 밤을 한 장면에 담은 '빛의 제국' 시리즈가 유선형의 벽면에 투사되는데, 특유의 하늘빛과 구름과 저택의 실내등이 거울 필름으로 마감한 바닥까지 번진다. 공간 전체를 빛으로 채운다는 점에서 제주 '빛의 벙커'를 연상시키는데, 고흐가 강렬한 전율로 두피를 자극한다면, 르네는 꿈속에서 차를 마시듯 차분한 몽환으로 안내한다. "내 작품이 전하려는 것은 한 편의 시(詩)라고 말하겠다"고 생전의 르네는 말했다.

100평 공간을 미디어아트로 채운 ‘이머시브 룸’.

백미는 전시 후반부 100평 규모 '이머시브 룸'(Immersive room)이다. 움직임을 얻은 그림 160여 점이 40분간 율동 하는데, 구름을 머금은 눈알이 바닥을 흘러다니고, 미지의 인간이 땅에서 석상처럼 솟아오르는 파스텔 색감의 형상들이 피아노 야상곡과 이차크 펄먼의 바이올린 선율과 뒤섞인다. 관람객 정아인(28)씨는 "유명한 작가지만 좀처럼 알기 힘든 내밀한 지점까지 살필 수 있었다"며 "특히 마지막 미디어아트는 전시 전반을 복습하는 효과를 줬다"고 말했다.

전시 말미, 일몰을 담은 '연회'와 달밤 풍경 '백지'가 동시에 삼면을 메운다. 현실을 초월함으로써 전시장 바깥을 잊게 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것이 어떤 것을 숨기고 있는지 보고 싶어한다." 이제 그것을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