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위기에 직면했다. 소프트뱅크가 운영하는 비전펀드가 지난 회계연도에 167억달러의 손실을 냈고, 그로 인해 소프트뱅크는 15년 만에 첫 손실을 기록했다. 손정의는 올해 3월까지 비전펀드에서 투자한 기업들 대여섯 곳의 주식을 상장(IPO)하고, 2021년까지는 추가로 투자사 열 개를 상장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팬데믹으로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그의 계획은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게다가 비전펀드가 투자했던 위워크와 창업자가 소프트뱅크가 30억달러 규모의 주식 매수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며 투자자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세계 최대의 벤처캐피털이 투자 기업에 소송을 당하는 건 체면을 크게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작년부터 나온 위기 신호

사실 위기 신호는 이미 작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기업들이 줄줄이 실망스러운 실적을 낸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Uber)의 상장이었다. 2019년 최대의 IPO라며 큰 기대를 했지만 공모가를 밑돌고, 상장 후에도 주가가 연이어 하락하면서 실망감을 주었다. 더 큰 충격은 코워킹 스페이스를 제공하는 위워크(WeWork)의 상장 실패였다. 손정의가 사무실의 미래라며 흥행사 역할을 하고, 비전펀드 사상 최대인 200억달러를 투자했던 위워크의 실패는 그의 투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특이한 투자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멕시코의 음식 배달 앱 시장이다. 멕시코는 우버의 음식 배달 서비스 우버이츠(Uber Eats)가 야심 차게 진출한 시장이다. 그런데 2018년 무렵 두 개의 강력한 경쟁 기업이 나타나 웃돈을 주면서 우버이츠의 가입 음식점과 배달원들을 빼내가기 시작했다. 중국의 승차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과 콜롬비아의 음식 배달 서비스 라피(Rappi)였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경쟁자들이 웃돈을 지불할 수 있었던 "실탄"이 비전펀드에서 왔다는 사실이다. 손정의는 이 세 회사에 총 200억달러를 나눠서 투자했고, 3사는 같은 투자자의 돈으로 출혈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소위 공유 경제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은 투자받은 돈을 빠르게 소진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목표라고들 하지만, 같은 투자자의 돈을 받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투자펀드를 운용하는 주체로서는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실리콘밸리의 건전한 창업자 정신 훼손

물론 소프트뱅크는 일반적인 투자펀드 운용사가 아니다. 1천억달러라는 엄청난 규모를 가지고 벤처 투자의 개념 자체를 바꿔놓고 있는, 벤처 투자계의 공룡이다.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업계의 총규모가 550억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1981년에 소프트웨어 매장으로 시작한 소프트뱅크는 일본 3대 이동통신사 중 하나로 성장했지만, 2017년에 비전펀드를 설립한 이후 서서히 투자 회사로 변모 중이다.

손정의가 투자에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는 잘 알려진 대로 중국의 인터넷 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초창기에 투자해서 거둔 큰 성공이다. 그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와 같은 큰손들이 손정의의 감각을 믿고 펀드 조성에 합류하면서 세계 벤처 투자의 룰을 바꾸는 하나의 중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손정의의 비전펀드는 최소 1억달러를 투자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웬만한 실리콘밸리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따라서 스타트업들은 비전펀드의 투자만 받으면 그 자금력만으로도 경쟁 기업들을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손정의는 그런 전략을 적극 장려해왔다. 멕시코 음식 배달 앱 시장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출혈 경쟁도 그렇게 발생한 것이다.

아무리 손정의가 업계 1위 기업에만 투자한다고는 해도, 뛰어난 실력과 기술이 있는 경쟁 기업들이 단지 돈에 밀려 사업을 접게 되는 상황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과 창업자가 빠지는 모럴 해저드. 위워크가 그 대표적인 경우로, 창업자 애덤 노이만은 회사가 IPO에 실패하고 경영난에 빠졌지만 자신은 우리 돈으로 1조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이런 모습을 두고 실리콘밸리의 건전한 창업자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비전펀드가 투자 시장에 쏟아부은 금액이 지나쳐서 스타트업들이 수익 창출에는 관심이 없고 대형 투자자를 만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단기 손실에 개의치 않겠다는 손정의

하지만 시장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위워크의 IPO 실패를 비롯해서 투자액으로 시장만 장악했을 뿐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에 대한 다른 투자자들의 관심이 식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손정의가 심혈을 기울인 승차 공유 서비스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고, 오요(Oyo), 오픈도어(Opendoor) 등 오프라인 시장을 연결하는 스타트업들도 심각한 문제에 빠졌다. 이 때문에 손정의는 자신이 투자한 기업 중 열다섯 곳 정도가 파산할 것 같다고 전망하면서 일부 스타트업과 투자 약속을 깨기도 해 비난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일이 이어지면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손정의에게 투자받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일부에서 나오는 “비전펀드는 이제 끝났다”는 비판에도 “정보 혁명은 앞으로 300년 동안 지속된다”며 단기 손실에 개의치 않고 장기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손정의. 그의 말을 다른 투자자와 스타트업들이 얼마나 동의해주느냐가 소프트뱅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