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어서 학교 가야지.” 일 났다, 숙제도 안 했는데. 방과 후 한숨 자고 깨보니 날이 희부옇지 않은가. 시침(時針)도 7을 지나, 얼뜨기 초등생 골리기 십상 좋았다. 해 질 녘과 동틀 무렵, 왜 그다지 헛갈렸을까. 세월이 어지간히 흘렀건만 여전히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이 또 있다.

'자정(子正)'은 대체 하루의 시작인가 끝인가. 사전만으로 따져보자. 펴낸 지 비교적 오래된 두어 사전이 '영시(零時)', 대부분은 '밤 열두 시'라 풀이한다. 한데 정작 밤 열두 시라고 한 사전의 '하루' 풀이에서 반대 실마리가 보인다.

'하루=대개 자정부터 다음 날 자정까지를 이른다.'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오전(午前)'과 '오후(午後)' 풀이를 보면 뚜렷해진다. '오전=자정부터 낮 열두 시까지의 시간.' '오후=정오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시간.' 결국 자정은 본래 하루의 시작을 가리켰으나, 밤 12시를 말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뀐 것 아닐까. 그래도 혼동을 피하려면 '8일 자정' 대신 '8일 밤 12시'로 써야겠다.

'저녁'도 갈피 잡기 어렵다.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 한데 '밤'은 어느 시점이 아니라 '해가 진 뒤부터 날이 새기까지' 아닌가. 저녁이 언제인지 사전으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언어 현실에서는 대체로 22시 이후면 저녁보다 밤이라 한다. 밑도 끝도 없는 풀이를 이대로 둬선 곤란하다.

'새벽'은 또 어떤가. 사전 풀이는 대체로 '날 밝을 무렵' '동틀 무렵'이다. 어떤 데서 '자정 이후 날 밝기 전까지'를 덧붙여 역시 명쾌하지 않다. 실제로 언론에서 '새벽 0시 30분' '새벽 2시 50분'처럼 해 뜰 무렵과는 먼 시점도 흔히 새벽이라 표현해 혼란스럽다. 이런 시간은 '오전'으로 표현해야 알맞지 않을까.

초저녁에 잠든 얼마 전, 눈뜨니 어슴푸레한 빛이 커튼 사이를 비집었다. 여명(黎明)인가 했는데 가로등 빛 아닌가. 떠오르는 어린 시절, 착각 덕분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