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쥬라기공원3'에서 스피노사우루스는 공룡계의 최강자 티라노사우루스를 압도했다. 사실 티라노사우루스가 스피노사우루스보다 2500만년 이상 뒤에 나타나 두 육식공룡의 전투 장면은 허구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두 공룡을 동시에 복제하면 어떨까. 과학자들이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서 새로 발굴한 화석을 근거로 두 공룡이 동시대에 살았어도 마주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육지를 지배하고 스피노사우루스는 물속 최강자였다는 것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머시대의 니자르 이브라힘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3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발굴한 화석을 통해 9500만년 전 살았던 스피노사우루스가 노처럼 생긴 길고 강력한 꼬리로 물속을 헤엄쳐 다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고 밝혔다.

스피노사우루스는 라틴어로 '등뼈 도마뱀'이란 뜻이다. 등뼈들이 척추에서 수직으로 뻗어 마치 돛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스피노사우루스가 악어와 비슷한 턱과 이빨을 가졌다는 점에서 오늘날 회색곰처럼 물가를 걸어 다니며 물고기를 잡아먹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2015~2019년 모로코의 켐켐 지층에서 그동안 형태를 알 수 없었던 꼬리뼈가 온전히 발굴되면서 스피노사우루스의 생전 모습이 다시 바뀌었다. 공룡은 다 자라지 않았지만 몸길이가 12m를 넘고 꼬리 길이만 5m에 가까웠다. 꼬리에도 등처럼 뼈들이 수직으로 나 있어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꼬리의 축을 이루는 뼈들은 서로 완전히 맞물리지 않아 악어처럼 흔들기에 좋은 형태였다.

연구진은 화석 형태대로 꼬리 모형을 만들어 실험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꼬리를 흔들어 물속에서 동시대 다른 육식 공룡보다 8배나 강한 추력을 만들 수 있었다. 에너지 효율도 3배 가까이 높았다. 이는 오늘날 악어에 맞먹는 수치였다. 두 발로 서서 사냥한 수각류(獸脚類)에서 처음으로 물속을 누빈 공룡이 확인된 것이다.

이브라힘 교수는 "이번 발견은 수중 세계를 공략한 육지 공룡은 없었다는 생각에 종지부를 찍었다"며 "이 공룡은 얕은 물에 서서 물고기를 기다린 게 아니라 물속을 헤엄치며 적극적으로 먹이를 사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신중론을 폈다. 새로 발굴된 화석이 물속을 헤엄치는 데 적합한 형태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주로 물속에서 사냥했다는 주장에는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