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이언 버크하트(28)는 2010년 다이빙 사고로 척추를 크게 다쳤다. 사고 후 팔꿈치와 어깨는 움직일 수 있었지만 손에 감각이 없어 눈을 가리면 연필 같은 작은 물체는 감지할 수 없었다. 미국 배텔 연구소는 "버크하트씨의 뇌에 칩을 심어 손의 감각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고 최근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이제 그는 커피 머그컵을 들어 올리고 기타도 연주할 수 있다.

사지 마비 환자의 감각을 되살린 이 기술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이다.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추출·해석하고 이를 활용해 컴퓨터나 외골격 로봇 등 외부 장치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도 이 분야에 뛰어들며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BCI 시장은 2022년 17억3000만달러(약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래현 박사는 "BCI 기술은 장애인 재활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생각만으로 다양한 기기를 작동시켜 편리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걷는 상상만으로 로봇 다리 작동

배텔 연구소 연구진은 버크하트씨의 피부를 자극하면 감각 신호가 뇌로 전달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신호가 너무 약해 뇌가 인식할 수 없었다. 먼저 연구진은 뇌에 약 4㎜ 크기의 칩을 이식해 감각 신호를 수집했다. 이 신호는 컴퓨터로 가서 뇌가 반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증폭됐다. 연구진은 버크하트씨 팔뚝에 부착된 전극과 진동을 일으키는 밴드에 증폭된 감각 신호를 전달했다. 이번에는 증폭된 감각 신호가 뇌로 전달돼 버크하트씨가 물체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BCI 기술은 파킨슨병과 뇌졸중, 척수 손상 같은 신경 질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KIST 김래현 박사 연구진은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을 위해 외골격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진은 사람이 특정 동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뇌의 신호가 변하는 데 주목했다. 먼저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일어서거나 걷는 상상을 할 때 나오는 뇌파를 추출해 각각의 특징을 확인했다. 컴퓨터는 이 정보를 기반으로 로봇을 작동시킨다. 헬멧 형태의 뇌파 측정 장치가 생각을 읽으면 입는 로봇이 그대로 동작하는 방식이다. 김 박사는 "현재 정확도는 70~80% 수준"이라며 "뇌의 신호를 수집해 로봇을 작동시키는 반응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뇌 신호에 맞게 빛이나 약물을 전달해 치료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KIST 조일주 박사 연구진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40마이크로미터 두께의 탐침 네 개가 달린 브레인칩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생쥐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칩을 삽입하고 뇌의 신호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해마에 빛과 약물을 전달해 뇌 회로를 강화하거나 약화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뇌 신호로 컴퓨터·스마트폰 제어도

기업들도 BCI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2017년 설립한 뉴럴링크가 대표적인 업체이다. 뉴럴링크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에 뇌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전극을 달아 뇌에 삽입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뉴럴링크는 현재는 드릴로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전극을 삽입하지만, 머지않아 재봉틀 방식의 로봇을 통해 뇌 손상을 최소화하고 라식 수술처럼 간편하게 이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궁극적으로는 전극을 통해 사람의 생각을 읽어 컴퓨터뿐 아니라 스마트폰 등 각종 전자 기기를 무선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페이스북도 생각만으로 글자를 입력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7월 BCI 기술을 적용한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개발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간질 환자 세 명에게 객관식으로 질문했다. 원하는 악기가 무엇인지 물으면 드럼이나 바이올린을 골라 생각하는 식이다. 뇌 신호를 분석해 어떤 답을 했는지 알아냈는데 정확도가 61~76%였다. 페이스북은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안경에 BCI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다. 사용자가 '선택'이나 '삭제' 같은 몇 가지 단어를 생각하면 이를 기기가 인식하는 방식이다. 게임을 할 때 말은 물론, 손가락도 필요 없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