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n번방'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발의된 'n번방 방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법이 시행돼도 주로 외국계 온라인 서비스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예방하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사업자들이 성범죄물의 확산을 막지 못하면 과징금 부과 등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사업자에게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취지는 좋습니다.

문제는 n번방과 같은 범죄는 텔레그램·페이스북 등 해외 인터넷 서비스에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제아무리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조항을 신설해도, 국내법의 행정력이 닿지 않는 이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습니다. 결국 'n번방 방지법'은 국내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만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이번 n번방 사태의 수사와 후속 처리에서 해외 사업자들은 비협조적이었습니다. 러시아 IT 기업인 텔레그램은 우리 측의 수사 협조 요청에도 끝까지 조주빈 등 범죄자 일당의 신상 정보와 n번방 단톡방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IT 공룡인 구글은 성착취물을 유통한 것은 아니지만, n번방 연관 검색어와 피해자 이름·직업 등이 노출되는 검색 결과를 필터링 없이 노출했습니다. 보다 못한 '구글 n번방 연관 검색어 삭제'라는 민간 운동이 펼쳐질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국내에서 생긴 데이터라고 하더라도 해외 서버에 저장돼 있다는 논리를 댔습니다.

국내 인터넷 업계는 해외 사업자와의 형평성 문제 이외에 다른 우려도 있다고 봅니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앞으로 인터넷 사업자는 지금까지 암호화돼 저장돼 감청이 불가능했던 개인 간 대화를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기술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감청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차라리 국내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해외 사업자에게 국내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국내 서버에 저장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n번방 방지법'이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보여주기 식' 입법이 돼서는 안 됩니다. 끔찍한 사건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더 정곡을 찌르는 해법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