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청와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전 국민 고용보험제'에 대해 "분명히 가야 할 길이긴 하지만 일시에 도입될 수 있는 방안이 아니고, 단계적으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준비를 갖추며 갈 수밖에 없다"고 6일 말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란 실직 때 실업급여 등을 지급하는 고용보험 대상을 일반 근로자뿐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를 포함해 전 국민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 장관은 이날 서울 광화문 KT스퀘어드림홀에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주최한 '일자리 타운홀 미팅' 행사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논의가 본격화된 뒤 주무 부처 장관이 구체적인 의견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조기 전면 도입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취지는 이해하나 일시에 도입 안 돼"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일 한 세미나에서 "전 국민 건강보험처럼 전 국민 고용보험이 포스트 코로나의 과제"라고 말하며 불거졌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고용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부족하지 않냐는 지적이 이어진 뒤 나온 발언이다. 여당에선 이후에도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 경제 위기 극복에 성공하기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가 꼭 필요하고, 이번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도입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왔다.

이재갑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제안한 분들의 취지는 '일하는 모든 분이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그러나 "말씀하신 것처럼 하려면 일시에 도입할 수는 없다"고 했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재원 마련과 형평성 논란 등 현실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이 장관은 이날 사회안전망 단계적 확대를 위한 우선 과제로 특수 형태 근로자와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 조기 도입 두 가지를 제시했다. 일단 이 두 가지 제도부터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두 가지 모두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통과되지는 않은 방안이다. 국민취업제도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저소득층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 동안 지원금을 주는 제도로, 고용보험 혜택을 일부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 이 장관은 "정부가 현 단계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것들"이라며 "이런 제도 확대를 한 다음 그 이외 일하시는 분들에 대한 방법을 하나씩 논의해서 풀어가겠다"고 했다.

◇고용보험기금은 작년 2조877억원 적자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의 범위를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선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용보험 가입자는 1352만8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735만8000명)의 49.4%에 그쳤다. 일용직 근로자나 자영업자, 학습지 교사처럼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수 형태 근로자 거의 대부분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보험 가입자의 범위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 이날 행사에서도 여기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고용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원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에 대해 "보험료 징수 체계나 요율을 얼마로 정할지, 나중에 받게 될 실업급여를 얼마로 할지 모두 한꺼번에 정해야 한다"며 "근로자는 사용자와 보험료를 나눠 낼 수 있지만 특수 형태 근로자나 플랫폼 노동자는 그렇지 않고, 자영업자들은 가입을 꺼리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재원 마련도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영세 자영업자 같은 신규 가입 대상자가 고용보험료를 낼 능력이 있는지, 없다면 이를 세금으로 메워야 할지 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이 거둬들인 고용보험료는 11조4054억원이다. 고용보험 가입 범위를 모든 취업자로 확대하면 이것과 비슷한 금액이 추가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고용보험 가입자 범위를 늘리는 정책을 편 데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늘면서 고용보험기금은 작년에만 2조877억원의 적자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