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윤한수 6·25참전 소년소녀병 전우회 중앙회 회장이 대구 중구 태평로에 있는 사무실 입구에서 16년간 걸어뒀던 문패(門牌)를 가리키고 있다. 전우회는 이날 문을 닫았다.

"그저 소년병 출신 노인들에게 '나라를 지키시느라 수고하셨다' 한마디 해주면 됩니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안 해 주는지 모르겠네요. 이젠 그런 기대를 접으렵니다."

윤한수(87) '6·25 참전 소년소녀병전우회 중앙회'(소년소녀병 전우회) 회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16년간 품었던 소망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구시 중구 태평로에 있던 사무실은 지난달 말 문을 닫았고 단체는 활동을 종료했다. 지난 2004년 설립돼 '소년소녀병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해달라'는 한 가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운영했으나 그 뜻은 결국 노병의 한(恨)으로만 남게 됐다.

윤 회장은 "소년소녀병 국가유공자 예우 법률안이 16∼20대 국회 국방위원회에 상정되기도 했으나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며 "사력을 다한 과업을 마치지 못하고 죽은 동료 곁으로 갈 날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소년소녀병 전우회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탓에 마지막 회의도 하지 못했다. 활동 중단 안내도 문자로만 알렸다.

소년소녀병 전우회 회원들은 6·25 전쟁 당시 어린 나이로 낙동강 전투 등에 참전해 조국을 지켜낸 영웅들이다. 소년소녀병은 14∼17세 어린 나이에 참전한 병사다. 국방부에서는 6·25 당시 참전한 소년소녀병을 2만9616명으로 본다. 소녀병도 462명이나 포함돼 있다. 이 중 2573명이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전사했다. 최초로 참전한 전투는 1950년 8월 4일의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 전투로 알려져 있다. 55일간의 혈투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면서 인천상륙작전의 밑바탕을 닦았다.

소년소녀병 전우회는 외부 지원 없이 회원 140여 명이 1인당 연 5만원씩 내는 돈으로 사무실 임차료와 운영비를 충당해왔다. 소년소녀병들의 희생을 법으로 인정해 달라며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뛰어다녔다. 덕분에 소년소녀병의 실체를 인정받을 수 있었고 소년소녀병은 월 30만원 안팎의 참전 수당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등에 국가유공자 예우를 해달라는 청원서를 냈으나 "개별 공적을 따지는 다른 국가유공자와 달리 어려서 참전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면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윤 회장은 "어느 정권이나 소년소녀병의 희생에 대해 침묵하기는 마찬가지였다"며 "이제 누가 소년소녀병들의 넋을 기려줄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소년소녀병 전우회가 간판을 내리면서 매년 6월 전우회가 대구시 남구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 개최했던 '순국 소년소녀병 위령제'도 올해부터는 열리지 못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