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모(37) 사장은 지난 3월 20일 한 시중은행에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 5000만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는 데 한 달 가까이 걸리더니, 그 후 은행에서도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지난 6일 은행에서 "자금이 다 떨어졌다는 공문이 내려왔다"고 통보해왔다. 한 달 넘게 기다리고도 자금 지원을 한 푼도 못 받은 것이다. 최씨는 "정부가 잔뜩 생색내더니 혜택은 도대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6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긴급대출이 마감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차 대출 프로그램은 빨라야 18일부터 신청받고, 25일부터 심사가 시작된다. 당장 한 푼이 급한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한 달 가까운 대출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가 16조4000억원 규모로 마련한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10조원 규모로 2차 지원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이달 말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더군다나 대출 한도는 줄고 대출금리는 올라간다.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돈줄이 말라가는 소상공인들은 숨이 넘어갈 지경이지만, 정부 대응은 게걸음이다. 애초에 소상공인들의 자금 수요를 제대로 예측 못 한 탓에 대출 심사가 늦어지고 '정책자금 대출 보릿고개'까지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많아야 10조" 추정했는데…

6조~10조원. 지난 3월 19일 정부가 예상한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 수요다. 당시 정부는 "수요를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소상공인 대출 프로그램을 기존 2조원에서 12조원 규모로 확대해 본격 시행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하고 한 달 남짓 지나 재원이 거의 동났다. 부랴부랴 예비비를 투입해 대출 규모를 16조4000억원으로 늘렸다.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지난달 24일 기준 17조9000억원의 대출 신청이 몰렸다. 신청분이 지원 가능 규모를 이미 넘은 것이다.

실제 대출 창구는 닫히고 있다. 중신용자(4~6등급)가 대상인 기업은행 대출은 지난달 29일 소진됐다. 주로 저신용자(7등급 이하)가 찾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출도 6일 마감됐다. 고신용자(1~3등급)만 이용 가능한 시중은행 대출은 아직 남아 있지만, 8일 우리은행의 대출 접수가 마감되는 등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정부의 빗나간 수요 예측은 대출 지연으로도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 2월 초 처음으로 2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긴급경영안정자금을 풀 때부터, 대출 심사 업무는 지역 신용보증재단에 맡겨졌다. 그러나 대출 신청이 몰려드는데 감당할 심사 인력은 부족한 문제가 벌어졌다. 대출 신청 후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까지 2개월 이상 걸리는 사례가 허다했다. 결국 지난 3월 18일부터 한 달 넘게 대출 심사 업무 일부를 민간 시중은행으로 위탁했다. 그래도 제대로 협조가 안 된다는 비판이 많았다. 국내 최대 소상공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 카페에는 "3월에 (대출) 신청하고 아직도 못 받았다" "은행에 보증서를 들고 가도 자금이 떨어졌다는 말만 한다"는 불만이 수십 건 올라오고 있다.

◇2차 대출, 한도는 줄고 금리는 올라

정부는 지난달 29일 10조원 규모로 2차 지원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소진공·기업은행·시중은행으로 흩어진 대출 신청 창구를 시중은행 여섯 개로 통일하고, 대출 심사 역시 인력이 풍부한 은행에 맡기겠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2차 프로그램은 빨라야 18일부터 신청, 25일부터 심사가 시작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보증을 서는) 신용보증기금과 시중은행 사이에 전산망을 설치하고, 은행별로 새 상품을 만드는 데 적어도 2~3주는 걸린다"고 했다. 이미 소진공에서 신청받았지만 심사를 못 마친 1차 프로그램 대출(2조원)을 시중은행에 넘겨 처리하는 부담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갑이 비어가는 중·저신용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한 달 가까운 '대출 보릿고개'가 부담이다. 대출 요청이 물밀듯 밀어닥치는 것을 보고도 정부가 선제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다.

앞으로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의 한도가 줄고 금리는 뛴다는 것도 논란이다. 앞으로 최대 1000만원에 그친다. 금리는 기존(1.5%) 두 배가 넘는 3~4%로 오른다. 콜밴 사업을 하는 김모(65)씨는 "선거 전에 선심 쓰듯 1.5% 금리 대출을 광고하더니, 이제 와 한도를 줄이고 금리를 높이는 건 너무하다"고 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꼭 필요한 사람만 빌리도록 금리는 어느 정도 높일 수 있겠지만, 대출 한도를 1000만원으로 줄인 건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