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6일 공개한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방안에는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금기시하던 규제 완화나 도심 내 핵심 입지 개발 사업이 상당수 포함됐다. 특히 8000가구 규모 용산 미니 신도시나 재개발 사업지 분양가 상한제 면제 조치는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서울 강남권 등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아파트 재건축 사업 관련 내용은 빠졌다.

◇임대주택 늘리면 분양가 상한제 면제

이번 공급 대책을 통해 정부는 서울 시내에 총 7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 중 가장 많은 4만 가구가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통해 추진된다. 정부는 재개발 사업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기업이 공동 시행자로 참여하는 경우, '공공 재개발'로 분류하고, 행정절차를 간소화해 10년 이상 걸리는 사업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사업비 저리 대출, 저소득층 조합원 분담금 대납 등의 혜택도 제공한다. 특히 '주택공급활성화지구'라는 제도를 신설하고, 지정된 사업지는 분양가 상한제를 면제해 준다. 다만, 이 혜택을 받으려면 새로 짓는 아파트 중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일반 분양 물량의 50% 이상을 공적 임대주택(공공임대·공공지원민간임대)으로 제공해야 한다. 대신 정부와 서울시는 더 많은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건축 규제를 완화해 수익성을 보전해준다.

미니신도시 들어설 용산부지 - 서울 용산역 인근 철도정비창 터는 민간 주도로 이뤄지던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무산된 2013년 이후 지금까지 방치돼왔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 땅에 8000가구 규모 미니 신도시를 지어 서울 주택난 해소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이렇게 다양한 혜택을 주면서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려는 것은 경제적 수준이 다른 주민들이 어울려 살게 함으로써 계층 간 갈등을 완화하는 '소셜믹스' 정책 차원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입주 대상이 되는 세입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공공임대상가를 만들어 재개발 사업지 내에서 영업하던 자영업자의 정착을 돕기로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부는 도로변 노후 주거지를 재개발하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200가구 미만 공동주택을 재건축하는 '미니 재건축' 등 소규모 정비 사업도 활성화해 1만2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용적률(토지면적 대비 층별 건축면적 총합의 비율) 혜택을 받으려면 건축되는 주택의 20% 이상을 공적 임대주택으로 내놔야 했지만 앞으로는 10%만 내면 된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등 준공업지역의 옛 공장 터를 주거·업무 복합지역으로 개발하고, 도심 업무시설이나 상가의 빈 공간에는 1인 가구용 공공임대주택을 넣는 등 도심 내 유휴공간 재활용 방안도 눈에 띈다. 정부는 또 3기 신도시 등 기존에 추진하던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 중 약 9000가구에 한해 본 청약 1~2년 전에 미리 청약받는 '사전 청약제'도 도입된다.

◇용산 신도시, '헬리오시티+둔촌주공' 공급 효과

이번 공급 대책을 기존 대책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서울 도심 내에 8000가구 규모로 짓는 용산 '미니 신도시'다. 서울 시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거지역으로 꼽히는 용산에 임대주택을 제외하고 최대 6000가구 정도가 일반에 분양되는 것이다.

정부는 과거에도 서울 도심에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하려 했지만 서울시에서는 자투리땅만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 일각에서는 정부 재량으로 서울 시내 그린벨트를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번 용산 미니 신도시 개발로 국토부는 주택 공급이라는 명분을 챙겼고, 서울시는 그린벨트를 지킬 수 있게 됐다.

서울시내에서 6000가구는 적지 않은 규모다. 전국 재건축 사업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도 총 9510가구 중 조합원분을 뺀 일반 분양은 1558가구에 불과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는 강동구 '둔촌주공'도 일반 분양은 4700가구 정도로 예상된다. 용산 미니 신도시 하나만으로 강남 최대 재건축 단지 두 개에 맞먹는 주택 순증(純增)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이번 대책에 대해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지낸 제해성 아주대 명예교수는 "용산 같은 도심에 주택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땅의 가치에 걸맞은 랜드마크가 들어설 수 있도록 압축·고밀(高密) 개발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강남 재건축이 가장 확실한 공급 확대 방안인데 빠져 있어 '반쪽짜리 대책'에 그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