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경 월간 '디자인' 편집장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대량생산한 헨리 포드는 1908년 T형 포드를 선보이며 이런 말을 했다. "포드사(社)에서는 오직 T형 하나만을 생산할 것이며, 앞으로 포드에서 나오는 자동차는 모두 똑같은 모양, 똑같은 성능을 갖게 될 것이다. 단 색깔만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검은색이기만 하다면!" 웬만한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그의 야심은 대량생산 체계를 가리키는 포디즘(Fordism)이라는 말까지 탄생시켰다.

그러나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취향까지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당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한다는 것은 부유층의 사치품이나 가능한 얘기였다. 그럼에도 검은색이기만 하다면 원하는 컬러를 고를 수 있다고 말하는 자신감이라니!

포드 시대의 자동차란 일단 굴러가기만 하면 합격이었다.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자동차 브랜드들이 강조하는 것은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선택권이다. 다양한 컬러와 옵션, 내장재를 고를 수 있으며, 무엇보다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이 좋다고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취향 비즈니스'다. 세상에 나와 있는 비슷비슷한 성능과 가격을 가진 물건 중에서 단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힘. 물론 소비 사회가 만들어낸 마케팅과 프레임을 좇는 취향인지, 진짜 자신의 의지를 따라가는 취향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완벽하게 분리하기도 어렵다.

자신의 취향을 기르고 안목을 높이려면 가능한 한 많이 경험해보는 게 중요한데, 소비와 투자에 인색해서는 경험치를 늘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신의 고양과 소셜미디어 검색만으로는 실생활에서 좋은 취향을 갖기 어렵다는 뜻이다. 취향이 있다는 건 자신만의 안목과 경험이 쌓인 결과이며, 취향이 중요하다고 느낄수록 트렌드를 좇거나 쓸데없는 과시는 안 하게 된다. 따라서 안목과 취향이 좋다는 것은 여러모로 그 사람이 잘 살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취향에 우열은 없는 법. 타인의 취향을 존중할 줄 아는 태도가 있다면 더 멋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