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완공된 서울 전농동 '유일주택'은 복도부터 색다른 원룸이다. 복도 폭이 여느 원룸의 두 배쯤 되고 벽은 터서 밖이 내다보인다. 난간 밑 미니 화단에 입주자들이 바질이며 파를 심는다. 비좁고 어두침침하기 마련인 원룸 복도가 공동의 거실이자 베란다, 텃밭이다. 이 건물이 다가구·다세대로 불리는 공동 주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다.

건물을 설계한 박창현(48·에이라운드건축 대표)은 가장 사적 공간인 주택에 공공성을 더하는 실험을 해온 건축가다. 최근 만난 그는 "점점 폐쇄적으로 흘러가는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건축에 반영하려 한다"고 했다. 박창현은 동료 건축가 이진오·임태병과 함께 설계한 SKMS연구소로 2009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유일주택은 건축가 최하영(마인드맵건축)과 함께 설계한 작업이다.

①입주민 공용 베란다처럼 작은 화단이 조성된 서울 전농동‘유일주택’복도. ②유일주택은 방에만 신경 쓰는 보통 원룸과 달리 벽 곳곳에 틈을 내고 테라스를 뒀다. ③유일주택을 비롯, 주택의 공공성을 실험 중인 건축가 박창현.

원룸에도 이웃이 있다. 그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끔 신경 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지하에 함께 누릴 수 있는 성큰 가든(sunken garden;지하 공간의 상부를 개방해 만든 정원)과 1인 목욕탕이 있다. 방마다 샤워 시설이 있는데도 목욕탕을 따로 둔 것은 일종의 오마주(hommage;경의)다. "건축주의 부모님이 건물 자리에서 오랫동안 목욕탕을 하셨어요. 전에는 대중목욕탕이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잖아요." 층과 층 사이의 바닥(슬래브)도 완전히 막아버리지 않고 이웃의 기척이 느껴지도록 곳곳을 텄다.

6월 완공 예정인 홍은동 공동주택에는 '입주자들이 한 달에 한 번 함께 식사한다' 같은 규칙을 도입할 예정이다. 공동체 활성화를 돕는 서울시 지원 사업을 통해 짓는 건물이다. 박창현은 "규칙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입주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다가구·다세대는 수백 세대짜리 아파트보다 훨씬 내밀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아파트와 똑같이 개별성만을 강조하는 구조로 지어지는 게 문제"라고 했다.

더 사적인 단독주택에도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제주 '서호동 주택'은 정원을 담 안에 가두지 않고 길가에 배치했다. 지나는 이들과 함께 꽃과 나무를 즐기기 위함이다. 경기 양평 '신화리 주택'은 담장 대신 둔덕으로 집의 경계를 표현했다. "이웃 친구들이 드나들며 이 집 아이들과 어울리도록 아이디어를 냈죠." 물론 전향적인 건축주와의 공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창현은 '인터뷰하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48회에 걸쳐 한국과 일본·포르투갈·프랑스 건축가 36팀(인원으로는 64명)을 인터뷰했고 재작년부터는 그 이야기를 건축 계간지에 싣고 있다. 10년쯤 전 방문했던 일본의 한 대학 도서관에 한국 건축 관련 책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우리 건축을 알리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집필·강연 등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건축가가 많지만 다른 건축가들을 꾸준히 인터뷰해 활자화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박창현은 "인터뷰하다 보면 건축가로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재해 때문에 사람이 혼자서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어요. 건축가들이 거실·주방 등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공동주택)를 대안의 하나로 제안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주택이 공공적일 수는 없는지 고민하게 되는 거죠." 그는 "아파트로 인해 잃어버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제안하는 건축을 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