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방역 체계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6일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완화했다. 짧게는 40여일, 길게는 70여일 문을 닫았던 국립 박물관·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모처럼 민간 실내 상업시설에도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공공시설 가운데서도 운영 주체에 따라 문을 여는 곳과 그러지 않은 곳이 공지 없이 엇갈리면서 방문객들이 헛걸음치는 사례가 나왔다. 또 비현실적인 정부 방역 지침에 대한 불만과 그로 인한 혼선도 곳곳에서 빚어졌다.

6일 오후 5시쯤 서울 성북구 종암동 A헬스장 남자 샤워실에서는 운동을 마친 남성 3명이 샤워하고 있었다. 이날부터 시행된 정부의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은 헬스장 체육 시설은 이용하되 샤워장은 이용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손님들에게 이 정보를 전하자 "그러냐? 몰랐다"고 했다. 홍모(25)씨는 "어차피 다른 사람 땀 묻은 헬스 기구를 함께 쓰는데, 그건 괜찮고 멀찌감치 떨어져 샤워하는 건 안 된다는 근거가 뭐냐"며 "우리 집은 여기서 10분 거리인데 꼭 집에 가서 샤워할 바에는 그냥 계속 헬스를 쉬겠다"고 했다.

다시 문 연 국립중앙박물관… 입장 기다리는 시민들 -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시민들이 1~2m 떨어져 서서 전시관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생활 속 거리 두기가 시작된 이날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6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정문이 열렸다. 2월 24일 문을 닫은 이후 73일 만이었다. 박물관 입구로 향하는 길바닥에는 1m 간격으로 빨간색 구두 발자국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입장객 30여 명이 각각 스티커 위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시민들은 실내에서도 의식적으로 1m 이상 거리를 유지하며 관람했다. 시설마다 온라인 예약을 통해 '사회적 거리' 유지가 가능한 선에서만 입장객을 받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손님은 받지 않았다. 방문객 김모(26)씨는 "그동안 문화생활을 할 수 없어 섭섭했는데, 사람도 많지 않고 좋다"고 했다.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도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 아파트는 '정부 방역 체계 전환에 맞춰 단지 내 골프 연습장도 열어달라'는 민원이 이어진 끝에 이날 오전 문을 열었다. 대신 출입구를 하나로 통일한 뒤 발열 체크와 방문 기록부 작성을 의무화했다. 화성시 동탄신도시 한 아파트에서는 커뮤니티 시설 재가동을 앞두고 주민들 간에 "아이들 개교 시기에 맞춰서 열자" "아파트 호수에 따른 홀·짝수제를 도입하자" 등 토론도 활발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탁상행정 결과물에 가까운 정부 일부 지침은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날 오전 8시 당산역을 지나는 지하철 9호선 전동차 내부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했다. 그간 상당수 기업이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했지만, 이날부터 대부분 오전 9시 출근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회사원 박모(33)씨는 "지침에 따르면 만원 지하철은 그냥 보내고 타라는데, 출근 시간에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했다.

서울 상수동 미용실 원장 김모(38)씨는 '이·미용실 시설 의자 간격 2m' 규정에 코웃음을 쳤다. 그는 "벽에 붙여놓은 거울에 맞춰 의자가 배치되는데 다 뜯어내고 인테리어를 새로 하라는 거냐"며 "하나 마나 한 소리"라고 했다.

재택근무 끝… 판교 직장인들 마스크 출근 행렬 - 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인근에서 마스크를 쓴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이날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종료되며 그간 재택근무를 실시했던 판교 인근 IT 업체들은 단계적으로 정상 출근에 들어갈 방침이다.

현장에선 혼선도 빚어졌다.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 얼굴이 새빨개진 50대 조문객 3명이 서로 배웅하며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이날 마련된 빈소 세 곳에는 모두 30여 명의 조문객이 있었다. 장례식장 측은 지침에 따라 입장 시 이름과 전화번호 등 인적 사항을 기재하고 체온 체크 후 마스크를 쓰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별 빈소는 달랐다. 지침은 조문객들에게 30분 이내 조문하고 조의금 전달도 온라인 뱅킹을 이용하라고 권고했지만, 조의금 봉투 없이 조문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30분 넘게 머무는 사람도 많았다.

비슷한 시각 용산구 한남동의 한 주점에선 테이블마다 손님이 모여 찌개 등을 나눠 먹고 있었다. 100석 규모 가게에 손님은 20여 명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지그재그로 앉거나 자리를 띄워 앉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정부의 생활 속 거리 두기 세부 지침은 음식점·카페 등은 '포장 배달 판매 활성화'를 하라고 안내한다. 사장 신모(48)씨는 "그러면 배달집만 살아남지, 왜 월세 내고 영업하냐. 답답한 소리 말라"며 "모든 손님한테 반찬 1인분씩 따로 나눠주려면 식기도 새로 사야 하고, 설거지도 문제다.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힘들게 버텨왔는데 그냥 망하라는 얘기냐"고 했다.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공시설 가운데는 이날 문을 열지 않은 곳도 많았다. 이날 낮 서울 관악구 '용꿈꾸는 작은 도서관'에서는 굳게 닫힌 정문 앞에서 주민 도영택(48)씨가 발길을 돌렸다. 도씨는 "TV에서 오늘부터 도서관도 재개관한다고 해서 와봤다. 이전부터 단골로 이용하던 곳이라 궁금해서 왔는데, 따로 공지받은 건 없었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코인노래방에서는 이날 오전 알바생이 엎드려 자는 사이 손님들이 방명록을 작성하지 않고 드나들었다. 이 노래방은 "구청으로부터 새로운 지침을 받은 게 없다"고 했다. 오전 강남구의 한 PC방은 실내 곳곳에 '한 좌석씩 띄어 앉기' '마스크 착용 필수' 등의 안내문이 붙었지만 손님 23명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 직원은 "손님에게 띄워 앉기를 강요하거나, 마스크를 씌울 순 없는 거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