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몇 해 전 학교 100주년 기념으로 책이 나왔다. 일제강점기 전문학교 때부터 2000년대 학번까지의 동문 대표 회고문집이었는데, 그들이 회상한 학창 시절의 여러 정경 중 진정한 배움은 단연 책 너머, 교과목 너머의 것들이었다. 일례로 한 저명한 어학자께서는 출석부를 가슴에 안은 채 학생들이 보나 안 보나 꼭 목례를 한 후 교실에 들어오셔서 강의 시간이 저절로 경건해졌다. 또 한 시인 교수님은 갑자기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지자 지금은 빗소리 듣는 게 수업이라며 말을 멈추시는 바람에 그 순간이 그냥 시가 되어버렸다.

과연 이런 장면들 없이 배움이 가능할까? 이런 풍경 없이 학교가 의미 있을까? 온라인 강의라는 걸 하면서 든 생각이다. 코로나 덕분에 U-러닝(ubiquitous learning·사이버 공간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수행되는 교육) 시대가 부쩍 다가와, 급작스레 등 떠밀린 교수들은 각자의 방법을 찾아 분투 중이다. 동영상 '뽀샵', 만화·인형 활용 등 온갖 '꿀팁'과 '모범 사례'도 나왔다. 학생들은 클로즈업된 얼굴에서 요점 정리 슬라이드까지 한눈으로 보게 되었지만, 사설학원 '인강'(인터넷 강의)을 경험한 눈높이에는 어설프고 따분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의 실망감은 기술적 측면에 앞서 더 본질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나 싶다. 사이버 세계에 익숙한 학생들로서는 대학만큼은 사이버 공간 이상이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대학의 특별함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들은 푸른 나무 우거진 교정, 축제와 응원 연습의 열기, 젊음의 온갖 몸짓과 함께 이전 경험과는 다른 '진짜' 배움을 원한다. 학원을 다닌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내 돈 주고 산 강의'라는 의식이 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향한 갈증도 그만큼 강하다.

보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어깨너머로 배운다는 말도 있다. 보통 가정교육이 그렇게 이루어지고, 거장으로부터의 도제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교는 교과과정의 제도를 포함하여 '보고 보여주는' 상호작용까지가 모두 한곳에 마련된 총체적 배움터이다. 그 면에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옛말에는 학습의 적정 거리에 대한 비유적 의미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그림자 안에 바짝 붙어 따라다니면 존경하는 스승의 모습을 온전히 보고 배울 수 없지 않은가.

일러스트=이철원

비대면·언택트(untact) 교육이 그래서 역설적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서 실제로 배우는 건 그가 가르치려 들 때가 아니라 그러지 않을 때인 경우가 많다. 학생은 선생의 살아 있는 어투, 표정, 몸가짐, 무의식적 반응, 헛소리, 심지어 그의 말이 아닌 침묵을 보며 은연중에 배운다. 그것이 '진짜' 학원의 풍경이자 전통인데, 사이버 모니터 안의 확대된 얼굴은 아쉽게도 그 큰 그림을 가려버린다. 보는데 보지 못하는 맹점이 거기에 있다.

사실 비대면 원격 강의는 신자유주의 입장의 대부분 대학이 꽤 오래전부터 유도해오던 바다. 시대 변화에 발맞춘 첨단 교육의 효율성과 확산력은 대학 평가의 주요 기준이자 강의 성과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의 전통과 혁신, 즉 가르치는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 질과 양을 다 좇아야 하는 오늘의 강단이 선생에게는 솔직히 힘겹다. 넉넉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사람, 한 마리만 잡는 사람, 또는 한 마리도 못 잡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혹시라도 한 마리만 잡은 그것이 형식과 양의 '껍데기'라면, 우스꽝스러운 노릇이다.

교육에 있어서만큼 단순 자유경쟁과 발전 논리가 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오던 나는 포스트 코로나 대학의 미래를 걱정한다. U-러닝의 '뉴 노멀'이 벌써부터 대학에 잠식해 든 형식과 양의 관성을 부추기고 정당화할까 우려해서다. 배움의 본질이 망각될까 두려워서다. 책에 다 나와 있을뿐더러 다양한 인터넷 자료를 통해 한층 흥미롭게 제공되는 정보를 재탕하는 것은 무의미하니, 하나의 마스터(원판) 강의, 한 명의 마스터 교수만 있으면 된다는 논리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러 학교가 왜 필요한가? 여러 교수가 왜 필요한가?

실존적인 질문이다. 내게는 비대면 강의 테크닉보다 이 질문이 중요하다. '보는데 보지 못하는' 시대에 '보지 못해도 보는' 강의가 어떻게 가능할까 고민하다가 우선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더 정성을 쏟기로 했다. 가령 학생이 제출한 과제에 매번 대화하듯 온라인 답장을 쓰면,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그 학생 몫이 된다. 비록 서로의 얼굴은 보지 못해도, 일대일 관계가 이루어진다. 학생이 보건 안 보건 인사하는 바로 그 마음으로, 나는 답장을 쓴다. 그것이 내 당장의 존재 이유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