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소설가

“보석 상자의 열쇠를 훔쳐서 귀고리를 꺼냈느냐?” 카타리나가 입을 열었다. 자신의 말을 스스로 믿으려고 애쓰는 듯 목소리는 몹시 떨리고 있었다. “아닙니다. 작은 마님.” 내가 훔쳤다고 말해버리면 모두가 편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 마라. 하녀들은 항상 뭔가 훔치는 족속들이니까. 네가 내 귀고리를 가져갔지?”

ㅡ트레이시 슈발리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중에서.

누명을 쓰는 것처럼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단순한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지만 상황 판단이나 정직한 증언으로 무고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하물며 몇몇 사람이 작정하고 도둑이나 성추행범, 심지어 살인자로 지목하면 무죄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결백을 주장할수록 거짓의 올가미는 더 세게 숨통을 죄어온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17세기를 살았던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의 그림이다. 그 아름다움에 매혹된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명화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상상했고, 1999년에 동명 소설을 발표했다. 페르메이르 집에서 하녀로 일하던 그리트는 화가의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새 그림의 모델이 된다. 화가는 그리트가 진주 귀고리를 하길 원했는데, 사위의 재능을 아꼈던 장모는 딸의 귀고리를 몰래 가져다준다. 그리트는 이틀치 급료에 맞먹는 사비를 털어 마취제를 사고 혼자서 피를 흘리며 바늘로 귀를 뚫는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뒤늦게 본 화가의 아내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다짜고짜 그리트를 도둑으로 몰아세운다. 아내 잔소리가 귀찮은 화가도, 귀고리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장모도 하녀를 변호해주지 않는다. 결국 그리트는 도둑 누명을 쓴 채 화가의 집을 나온다.

‘자결하게 해야’ ‘인천 앞바다에 묻어 버려야’ ‘다시는 회생 못 하게 폭격해야’ 한다는 대화는 조직폭력배들의 것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대표를 성추행 혐의로 모함했던 서울시립교향악단 직원들이 나눈 메시지 내용이다. 최근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집단 안에서, 이익 앞에서 사람들은 곧잘 사악해진다. 그래서 누명을 벗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울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