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 이용자가 3억명이 넘는 미국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Reddit)의 주간 애니메이션 랭킹에서 '신의 탑(tower of god)'이 1위에 올랐다. 한국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1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이 순위는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매긴 평점과 관심도를 계량화한 것으로, 최신 트렌드의 척도로 통한다.

지금까진 줄곧 망가(Manga·일본 만화)와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가 이 순위의 상위권을 거의 독식했다. 하지만 '신의 탑'(5편)은 방송 5주째인 이달 1일에도 2위를 지켰고, 톱 10의 나머지 9편은 모두 일본 망가·아니메였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Forbes)는 "'신의 탑'을 보면 5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원작의 매력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 만화(漫畫)가 미국 코믹(comic)이나 일본 망가에 이은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네이버웹툰·코미코·픽코마와 같은 한국 웹툰(webtoon) 플랫폼(정거장)이 수백~수천만 글로벌 독자를 끌어들이면서 한국의 'Manhwa(만화)'라는 표현이 이용자 사이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웹툰은 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만화를 의미하는 '카툰(cartoon)'을 합친 한국식 신조어다. 미국 온라인 콘텐츠 전문 매체인 에이셉랜드는 "지난 30~40년 동안 아시아의 코믹 창작물은 모두 망가로 통했지만, 당시에도 한국엔 만화(Manhwa)라는 장르가 존재했다"며 "스마트폰·태블릿PC 같은 테크놀로지 덕택에 만화가 북미·유럽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만화의 재발견, 조회수 45억회 '신의 탑'

필명으로 SIU(시우)를 쓰는 이종휘 작가의 '신의 탑'은 누적 조회 수 45억회다. 주인공인 소년 '밤'이 소녀 '라헬'을 찾아 탑에 오르는 판타지물이다. 11년째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이 작품은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11개 언어로 번역됐다. 작년엔 웹툰(2부 20화) 한 편에 독자 댓글 100만개가 달리기도 했다. '노블레스'(누적 조회 수 46억회)와 '갓 오브 하이스쿨'(38억회)도 신의 탑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성공한 만화가 버는 돈도 엄청나다. 이달 1일 한국 만화 '나 혼자만 레벨업'은 일본에서만 하루 동안 2815만엔(약 3억2300만원, 거래액 기준)을 벌었다. 일본인 독자 약 50만명이 편당 61엔(700원)씩 내고, 웹툰을 본 것이다. 카카오의 일본 자(子)회사 카카오재팬이 운영하는 웹툰 '픽코마'에서 공개하는 이 만화는 지난 14개월 동안 일본에서 7억6500만엔(약 88억원)을 벌었다.

한국 만화 세계 진출의 뒷배는 네이버웹툰·픽코마·코미코 등 한국 3대 웹툰 회사다. 이들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문지르면 보기에 딱 좋은 만화 장면이 나오는 앱 서비스를 제공해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웹툰은 세계 100국 이상에서 구글 앱장터의 만화 카테고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월간 이용자는 6200만명이 넘었다. 일본 시장에서 유독 강세인 픽코마와 인터넷 기업 NHN의 웹툰인 코미코도 각각 450만명과 600만명에 달한다. 상승세는 더 무섭다. 매년 이용자 증가율이 두 자릿수 다. 한국 만화는 이 물결을 타면서 전 세계 독자들과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10대의 마음 사로잡아

한국 만화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 여전히 세계 만화의 60% 이상을 장악한 일본 망가와 비교하긴 이르다. 또 한국 만화와 웹툰이 승승장구한다고 해도 세계 디지털 만화는 2조~3조원의 협소한 시장이다. 종이책 만화까지 합쳐도 10조원 안팎이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를 장악한 일본 망가도 협소한 시장의 벽에 막혀 할리우드 영화처럼 대규모 자본력의 콘텐츠 산업으로 발돋움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만화의 한계를 넘으려면 애니메이션(시장 규모 47억달러)과 방송(4958억달러), 영화(448억달러), 게임(1196억달러) 등 주변 시장으로 확장해야 한다. 만화 구독의 협소함을 원작의 지식재산권 판매로 메우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넷플릭스가 연내 제작·공개할 드라마 '스위트홈'의 원작은 동명의 웹툰이다. 한국 만화는 독특한 세계관에 치우친 일본 망가와 달리, 일상과 현실의 다양한 주제를 담은 작품이 많아, 드라마나 영화화에 유리하다.

세계 젊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좋은 신호다. 네이버웹툰에서 전체 이용자 중 젊은 층(14~24세)의 비율은 미국(75%)·일본(41%)·한국(46%)·대만(61%)·태국(57%) 등 나라를 가리지 않고 매우 높다. 젊은 층을 잡은 만큼, 드라마·영화 등 2차 저작물의 성공 가능성이 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