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북부 자우즈잔주(州)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무장 단체 탈레반은 최근 주민들을 상대로 '건강 워크숍'을 열고 있다. 행사장 입구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역복을 입고, AK-47 소총을 든 탈레반 전사들이 주민을 맞는다. 그러나 행사장에 들어가면 비누로 손 씻기, 마스크 착용법, 결혼식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 피하기, 모스크(이슬람교 사원) 대신 집에서 기도하기 등 코로나 확산 예방 교육이 이어진다. 탈레반은 주민들에게 "면역력을 키우려면 비타민 C가 많이 든 채소를 먹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탈레반은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중동에서 가장 코로나가 심한 이란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20일간 의무 자가 격리하도록 하고 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는 지난달 27일 발표한 자료에서 "탈레반은 바이러스가 퍼지는 지역에 마스크와 장갑을 배포하고, 과거 자신들이 '서구의 대리인'이라고 부르며 공격했던 국제 의료진의 안전도 보장하고 있다"고 했다. 탈레반을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미 국무부조차 공식 트위터 계정에 "코로나에 맞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국제 의료 단체들에 안전한 경로를 제공하는 탈레반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했다.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코로나가 중동에 맹위를 떨치던 지난 3월 "전사의 정신으로 싸워야 하는 진짜 전쟁"이라며 코로나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총병력의 40%에 달하는 2만5000여 명을 거리 방역, 긴급 후송 등에 투입하고 있다. 진료·검사·격리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원스톱 진료소'를 만들기도 한다. 호텔을 임차해 환자 격리 시설로 쓰고, 빈민들에게 쌀과 식용유 배달도 한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헤즈볼라가 하고 있다"고 했다.

탈레반과 헤즈볼라뿐만이 아니다. 시리아 북서부를 점령하고 있는 무장 단체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를 담은 홍보물을 하루에 수천 장 인쇄해 배포한다. FP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3월 말에서야 시작한 도시 방역 등 뒤늦은 대응보다는 훨씬 낫다"고 평가했다.

테러 단체들이 코로나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주민 신뢰를 얻고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서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부패한 정부보다 공정하고 빠르게 대응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시험받고 있고, 테러 조직과 같은 비국가 단체들이 끼어들 여지를 주고 있다"고 했다. 공공 의료 시스템이 열악해 일반인은 아파도 비싼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무료 검사와 격리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테러 집단들은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전투를 멈추지는 않는다. 탈레반은 3월 중순에만 코로나 환자가 나온 아프간 지역 수십 곳에서 300회 이상의 공격을 감행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FP는 "폭력을 동원해 상당한 민간인 피해를 주는 단체들이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를 향상하는 노력을 선전하는 것은 역설적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