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어린이날인데 왜 선생님은 약속 안 지켜. 으앙!"

4일 오전 대전 한 가정집에서 아홉 살 여자아이 수연이(가명)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장이 또래에 비해 왜소한 체구의 수연이를 달랑 들어 창밖을 보여주며 "열 밤만 더 자고 나서 놀러 가자"고 어르고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우는 소리는 더 커졌다. 이곳은 버려졌거나 학대 등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의 아이들을 돌보는 '공동생활가정'(그룹홈·소규모 보육원)이다. 26평 단독주택에 수연이를 포함한 어린이 7명이 '선생님'으로 불리는 원장과 함께 지낸다.

이 그룹홈 막내인 수연이는 태어난 지 20여일 되던 날 이곳에 와 9년째 머물고 있다. 수연이뿐만 아니라 이곳 아이들 모두가 올 초부터 어린이날만 기다려왔다. 자연휴양림으로 1박 2일 캠핑을 떠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무산됐다. 이곳 원장은 "여기 애들은 '어린이날'과 '생일'만 기다리며 사는데, 올해는 집 안에만 있게 돼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 말 전국 복지 시설에 '외출 자제' '외부인 출입 제한' 지시를 내린 상태다.

보육원·그룹홈 등 '아동 생활 시설' 어린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여파 속에서 유난히 쓸쓸한 5월을 보내고 있다. 소외받는 시설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이 낀 5월은 특별하다. 잠시나마 사회의 관심과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올해는 선물도 후원도 확 줄었고, 봄 나들이조차 못 한다. 믿고 따르던 자원봉사자 발길도 끊겼다.

매년 5월은 1년 중 복지 시설에 후원금과 후원품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달이다. 하지만 경기도 아동 생활 시설 '평화의집'은 이번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선물을 '1인당 하나씩'도 주지 못할 상황이다. 시설 관계자는 "어린이날 후원품이 작년의 절반도 안 된다"며 "후원 자체가 금지된 건 아니지만, 직접 방문을 막아놓으니 후원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기 악화 영향도 있다. 서울 은평 천사복지원 관계자는 "3만~5만원씩 후원해주던 개인 후원자들이 많이 줄었다"며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후원자들 주머니 사정이 많이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후원은 줄었는데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에 나가지 않으니 식비는 배로 드는 상황"이라며 "포털 사이트에서 긴급 모금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충남 서산의 한 보육원은 연례행사이던 어린이날 동물원·놀이공원 나들이를 조촐한 과자파티로 대체했다. 그러자 원생 56명은 "언제 나갈 수 있느냐"고 투정을 부렸고, 원장은 "조금만 더 참자"고 달래느라 애를 썼다.

가족처럼 대해주던 자원봉사자 발길도 끊겼다. 의정부 한 보육 시설 원장 정모(53)씨는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와서 놀아주는 대학생 자원봉사 언니·오빠가 오는 날만 기다렸는데, 2월 이후 발길이 끊겼고 어린이날조차 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 아이들 모두가 시무룩하다"고 말했다.

'아픈 어린이'들도 외롭다. 대형 병원들은 어린이날이면 '어린이 환자'를 위한 행사를 열었지만, 올해는 아니다. 별도 어린이 병동(320병상)을 갖춘 서울대병원도 올해 어린이날 행사가 없다. 30년 만에 처음이다. 작년까진 각종 공연과 캐리커처 그리기, 타투 스티커 붙이기 행사를 열었다. 어린이날 마술·연극 공연을 선사했던 신촌 세브란스병원도 마찬가지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어린이 환자에겐 설상가상으로 병문안도 줄었다"고 했다.

이런 어린이들에 대한 '심리 방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영탁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장은 "석 달 넘게 집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 짜증이 늘고 예민해지는 아이가 많다"며 "특히 남자아이들은 평소에는 외부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분출하는데, 그걸 못 하니 시설 내 아이들끼리 힘겨루기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금 16억원을 긴급 투입해 시설 아동들을 대상으로 미술·놀이 치료 등 심리 방역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