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그동안 우리는 야생동물은 본디 밤에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줄 알았다. 많은 척추동물, 특히 육식성 포유동물 눈에는 인간에게는 없는 특수한 반사판(tapetum)이 있다. 망막을 통과한 빛이 이 반사판에 부딪혀 망막으로 되돌아오면 밝기가 거의 두 배가 된다. 이 발견으로 우리는 야행성동물이 어떻게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우리보다 야간 시력이 탁월한 건 사실이지만 야행을 즐기는 건 아닌 듯싶다. 아프리카 가봉의 표범들은 원래 하루 활동의 64%를 낮에 하는데, 인간의 사냥 활동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야행이 무려 93%에 달한다. 폴란드 멧돼지들은 인적이 드문 숲속에서는 야행 비율이 48%에 지나지 않지만 도시 인근에서는 90%에 이른다. 알래스카 불곰들도 생태 관광이 성행하면 76%가 밤에 돌아다니다가 관광객이 사라지면 그 비율이 33%로 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해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지 않자 세계 곳곳에서 야생동물이 도시를 활보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캥거루들이 차도를 질주하고, 영국 웨일스에서는 산양이 떼를 지어 시내 상점을 기웃거린다. 남아프리카 크루거 국립공원에서는 사자 수십 마리가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 낮잠을 즐기고,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대낮에 퓨마가 도심 한복판을 어슬렁거린다. 그동안 우리 때문에 나오지 못했던 게 분명해 보인다.

권력 지향적 정치인들은 예외일지 모르지만, 우리 대부분은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겪거나 내 존재 자체가 남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정말 견디기 힘들어한다. 본의든 아니든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게 그런 존재가 돼버렸다. 이미 77억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조신하게 행동해 다른 동물들에게도 약간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줄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