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이어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 일대 산불은 인명 피해를 남기지 않고 진화됐다. 약 12시간 이어진 산불에 산림 85㏊를 잃었지만 재산 피해는 주택 등 시설물 6동이 전부였다. 1년 전 같은 토성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약 14시간 만에 산림 1227㏊를 집어삼켰다. 2명이 숨지고 재산 피해도 막대했다. 올해 산불이 지난해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시간 진행됐는데도 피해 규모는 14분의 1에 그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은 '고성의 기적'이라 할 만큼 여러 가지 행운이 따라줬다"고 한다. 인가(人家)와 동떨어진 발화 지점, 산불의 급속한 진행을 막은 풍향의 변화, 새벽으로 가면서 떨어진 풍속, 높은 활엽수 비율, 소방 헬기가 진화에 활용한 인근 저수지 등의 요인들이 1년 전과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또한 1일 밤 소방·경찰 인력들은 주민 대피와 저지선 형성에 분투했고 2일 동이 트면서 소방 헬기 39대를 투입한 물량 공세도 효과를 거뒀다.

◇초기부터 人家 없는 쪽으로 번져

이번 산불은 야산 중턱에 자리한 도원 1리의 주택에서 시작됐다. 가장 인접한 민가와 직선거리로 4㎞가량 떨어진 외딴 주택이다. 불이 나자 도원리·학야리 주민과 군 장병 등 2205명이 긴급 대피했다. 다행인 것은 인근에 민가나 다중 이용시설이 없었다는 점이다.

반면, 지난해 산불이 발생한 토성면 원암리 인근에는 한화리조트와 일성콘도 등 대형 콘도와 리조트가 있었다. 안재필 고성군 산림과장은 "이번에 불이 난 주택 인근에 민가가 없던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주민이 모여 사는 도원 2리 등은 4㎞가량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산불 확산 단계에서의 풍향도 고성을 도왔다. 이번 불은 서풍을 타고 민가가 없는 능선을 따라 번졌다. 지난해 산불은 남서풍을 타고 속초 시내 아파트 등 주택 밀집 지역을 순식간에 덮쳤다.

◇예보와 달리 새벽 풍속 떨어져

이번 산불이 발생한 지난 1일 밤 도원리 일원에는 순간 최대 초속 19.1m(시속 68.76㎞)의 강풍이 불고 있었다. 지난해 고성 산불 때는 더 심했다. 당시 일몰 후 발생한 산불은 건조한 날씨(습도 19%) 속에 순간 최대 초속 32m(시속 115.2㎞)의 남서풍을 타고 속초 도심을 향해 빠르게 번졌다. 소방 당국은 이번 역시 그런 상황을 우려했다. 1일 밤 기상청이 '2일 새벽 고성 지역에 순간 최대 초속 25m(시속 90㎞)의 강풍이 불 것'이란 예보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2일 새벽을 기점으로 도원리 일원의 바람이 누그러들었다. 헬기가 진화 작업에 투입될 당시 순간 최대 풍속은 초속 5.4m(시속 19.44㎞)에 불과했다. 밤사이 바람의 방향이 자주 바뀐 것은 산불의 진행을 막는 역할을 했다. 안 과장은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뀐 탓에 불길이 일정 구간에서 맴돌았다"면서 "민가가 밀집한 지역이나, 군부대 탄약고 쪽으로 바람이 계속 불었다면 피해가 상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헬기 39대, 150분 만에 주불 진화

헬기를 발화 지점에 집중 투입할 수 있었던 것도 피해 면적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작년에는 고성·속초를 비롯해 강릉과 동해, 인제 등 강원도 내 5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 헬기를 한 곳에 몰아 배치하기 어려웠다. 2일 오전 5시 30분 일출과 동시에 현장에는 지난해보다 17대 많은 39대가 투입됐다. 그 결과 2시간 30여분 만인 오전 8시쯤 주불이 진화됐다. 게다가 산불 지역에서 불과 1㎞ 정도 떨어진 곳에 도원저수지가 있어 소방 헬기가 물을 담아 산불 지역에 뿌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번에 피해를 본 지역은 작년 산불이 났던 지역에 비해 활엽수 분포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이병두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방재과장은 "지난해 산불 이동 경로엔 침엽수가 많이 분포해 화재 강도가 컸다"면서 "침엽수는 송진에 경유 성분이 함유돼 있어 불의 폭발력을 높인다"고 했다.

산림과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40여분 뒤인 1일 오후 8시 53분쯤, 발화 지점에서 3.2㎞가량 떨어진 도학초교를 비롯해 학야 1·2리 일원 4곳에 저지선을 구축했다. 이 덕택에 40여 가구가 거주하는 도원 2리는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영희 고성소방서 현장대응과장은 "헬기 투입이 어려운 밤 시간대 도원리와 학야리 일대에 구축된 저지선이 민가로 번지려는 불길을 막아내 피해가 적었다"고 말했다. 불이 나자 강원지방경찰청은 고성서 경찰력 117명을 산불 현장에 투입해 주민 대피를 지원했다. 육군 8군단은 예하 부대인 22사단의 지휘체계를 군단 중심으로 일원화하고 장병들을 신속히 대피시켰다.

경찰과 소방 당국 등은 2일 합동 감식 과정에서 불이 시작된 동원 1리의 주택 주인으로부터 "집 안에 있다가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화목 보일러실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화목보일러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겨 정밀 감식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