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 귀로'(1987).

"아열대 태양빛의 신선한 농도가 극한에 이르면 흰빛도 하얗다 못해 누릿한 황토빛으로 승화된다. 나이 오십에 고향 제주의 품에 안기면서 섬의 척박한 역사와 수난으로 점철된 섬 사람들의 삶에 개안(開眼)했을 때, 나는 제주를 에워싼 바다가 전위적인 황토빛으로 물들어감을 체험했다."

'폭풍의 화가'로 불리는 변시지(1916~2013)의 생애를 망라한 첫 화집이 출간됐다. 일찌감치 현해탄을 건너가 20대에 일본 중앙 화단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귀국해 고향에서 바다와 바람의 풍광을 담은 작가의 내력이 다수의 미공개작을 포함한 그림 180여 점과 함께 화집 '바람의 길, 변시지'에 담겼다. 화가의 상징이 된 황토빛 화풍을 찾아가는 시기별 주요작뿐 아니라, 1981년 유럽 여행 당시 그린 풍경화 및 수묵화까지 다채롭다.

제주를 그리기 위한 새 기법이 필요했다. 폭음의 세월이 있었고, 신내림 현상까지 겪었다. "유독 내게는 바람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많다… 제주도는 바람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의 제주는 실경(實景)이 아니라 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