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션계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아시아계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윤 안(YOON)을 꼽을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 하와이, 시애틀 등지에서 살았던 그는 힙합 아티스트 버발(VERBAL)과 함께 2008년 세운 주얼리 브랜드 '앰부쉬(AMBUSH®)'를 패션 의류까지 확장하며 마니아층을 모았다. 2017년엔 전 세계 젊은 디자이너를 상대로 한 패션 콘테스트인 'LVMH 프라이즈'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인 2018년 봄,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LVMH 그룹 '디올'의 남성 주얼리 디렉터로 이름을 올리며 패션계를 다시 놀라게 했다. 지난해 디올이 BTS의 월드 투어 의상과 주얼리를 제작했을 때 그녀의 손길이 담겼다. 뉴욕타임스는 "세계적 팝스타인 리애나와 카녜이 웨스트가 팬을 자처하는 '스타들의 스타 디자이너'"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브랜드 앰부쉬와 유니클로의 협업 의상을 발표한 윤 안은 "어떤 옷이 편할지 고민하기엔 우리는 때로 너무 바쁘기 때문에, 이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옷을 디자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층이 열광하는 길거리 감성에, 튀는데도 과하지 않고 편안해 보이는 그녀 자체가 스타일 아이콘이 됐다. '협업의 여왕'으로도 불린다. 젠틀 몬스터를 비롯해 나이키, 리모와 등 세계적 브랜드와 줄줄이 협업하며 '완판'을 기록했다. 얼마 전 유니클로와 앰부쉬의 글로벌 협업 의상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만난 윤은 "좋아하는 게 있으면 실제로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보다 더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에, 그 분야에 더 미쳐 있었기 때문에 목표치에 굉장히 강하게 사로잡혀 나타난 현상 같다"고 말했다.

'열심'은 군인 출신 아버지를 비롯한 한국적 전통에서 배웠다고 했다. "주일만 빼고,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을 하셨죠. 저희가 성공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키우셨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미친 듯이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죠."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해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닌데도, 세계 패션계의 주류로 떠올랐다. 단순한 사물에서 색다름을 발견해 상품으로 키워내는 데 능한 것이 장점. 예를 들어 USB로 보이는데 목걸이이고, 등산용 고리인 줄 알았는데 팔찌인 식이다. 패션을 모르고 패션에 도전했을 때도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고 덧붙였다.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재능을 계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지요."

디즈니 '미니' 콘셉트의 유니클로×앰부쉬 의상.

한국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고, 일본과 파리를 오가며 일하는 그는 국적(國籍)으로 자신을 한계지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아시아 대륙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강조했다. 프랑스의 자존심인 디올에서의 경험으로 자신의 동양적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다고 밝혔다. "디올은 '프랑스다움(Frenchness)'이 무엇인지 계속 새롭게 정의하고, 역사성을 매우 잘 전달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죠. 디올의 철학에 빠져들수록 '아시아엔 왜 이런 브랜드가 없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시아가 단순 소비자 이상의 영향력을 지닌 요즘, 우리가 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K팝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거세지는 한국을 필두로 아시아의 엄청난 파워와 자원에 세계가 모두 놀라고 있어요.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지요. 우리는 앞으로 더 '아시아다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은 "유명해지는 건 목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제 삶의 목표요? 점점 좁아지는 세상에서 내가 어디까지 이룰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세계 무대에 더 많이 서 보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정답을 아는 것도 아니기에, 일을 하면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오늘 하는 일이 내일에 미칠 것이고, 올해의 행동이 내년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