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 출신 A 경감은 서울시 내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현역 경찰관이면서 동시에 재경(在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3학년생이다. 2018년 입학해 내리 3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다. 1학년 겨울방학 땐 국내 대형 로펌에서 1~2주간 인턴으로 일했고, 변호사 시험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작년 그 로펌에 채용이 확정됐다. 동기 중 첫 번째 ‘입도선매(立稻先賣) 채용’이었다고 한다. 내년 1월 변호사 시험만 통과하면 A 경감은 대형 로펌으로 갈 수 있다.

A 경감처럼 제복을 입은 상태에서 로펌행(行)을 꿈꾸며 로스쿨에 다니는 게 경찰대 출신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고 있다. 3일 국회 곽상도 의원(미래통합당)과 사법시험준비생모임에 따르면, 올해 로스쿨 신입생 가운데 57명이 경찰대 출신이었다. 지난해(27명)의 배(倍)가 넘는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현직' 경찰관이다. 올해 서울 B경찰서 한 곳에서만 경찰대 출신 간부 4명이 로스쿨에 합격했다. 로스쿨이 첫 입학생을 받은 2009년부터 올해까지 로스쿨에 입학한 경찰대 출신은 270명이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 시험장에 가면 경찰대 출신 수십 명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경찰관 생활과 로스쿨 수업을 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로스쿨을 졸업하려면 한 학기에 15~18학점씩 3년간 총 90~94학점을 들어야 한다. 한 과목당 보통 16번 정도 수업을 한다. 서울대 출신의 한 로스쿨 3학년생은 "수업 따라가고 시험 보느라 정말 죽어날 지경"이라고 했다. 대부분 로스쿨엔 야간 수업도 없다.

이런 난관을 도대체 현역 경찰관들이 어떻게 뚫어내는 걸까. 그 시작은 '교대 근무 부서'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파출소나 경찰서 112상황실 등에서 근무하면 이틀 일하고 이틀 쉬고, 또 수시로 연차와 반차를 써 수업에 나갈 수 있다. 올해 성균관대 로스쿨에 입학한 C 경위도 최근 근무지를 파출소로 옮겼다.

출결 사항이 성적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 수업을 골라 듣는 방법도 있다. "출석 체크가 허술하다"고 소문난 지방의 로스쿨엔 경찰대 출신이 최근 10년간 수십 명 몰렸다고 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선후배들이 실제로 '출결이 널널하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일단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다음에는 반대다. 더 중요한 보직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올 초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D 경감은 원래 있던 지구대를 떠나 경찰청 본청(本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러면 취업 시장에 나올 때 '현직 프리미엄'을 누린다. 대형 로펌 출신인 법무법인 전문 송동원 변호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커진 상황에서, 수사 실무를 아는 경찰 출신 변호사는 확실히 메리트가 있다"고 했다. 최근엔 김앤장·광장 등 대형 로펌은 물론 중소 로펌들도 경찰 출신 영입에 나서고 있다. 경찰에선 "로스쿨 간다고 현직을 버리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온다.

2015년 감사원은 육아나 질병 치료 등 사유를 내걸고 휴직을 한 상태로 몰래 로스쿨에 다닌 경찰관 32명을 적발했다. 그러자 '근무시간 외'에 로스쿨에 다니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경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경찰관의 '주경야독(晝耕夜讀)'이 불법이나 규정 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근무 태만 논란이 뒤따른다. 한 재경 로스쿨 재학생은 "현직 경찰로 일하는 동급생이 '나는 일 없는 부서에 있어서 근무시간에도 PC를 켜놓고 공부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다른 로스쿨 재학생은 "'경찰 동료들이 야간 근무를 빼주는 방식으로 편의를 봐준다'며 자랑한 경찰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더욱이 현직 대다수가 경찰대 출신이란 점에서 '먹튀 논란'도 있다. 국가는 경찰대 학생 1명을 배출하기 위해 기숙사비·생활비 등으로 약 1억원을 투자한다. 한 경찰서장은 "로스쿨에 합격한 경찰관 중 몇이나 경찰에 남겠느냐"며 "국가 입장에선 심각한 인력 유출 사고"라고 했다.

김재봉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와 경찰의 관계가 일방적인 지휘가 아닌 대등한 입장으로 변하게 됨에 따라, 경찰의 전문적 법률 지식이 요구되고 있다"며"근무하면서 로스쿨을 다니다 퇴직하는 경찰관의 사례다 잇따르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매년 20명씩 채용하는 '변호사 특채'를 늘리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곽상도 의원은 “현장에서 본업에 헌신하는 경찰과 고학하는 로스쿨생 입장에서는 월급 받으면서 경찰과 로스쿨 생활을 어정쩡하게 병행하는 이들에게 화가 날 것”이라며 “경찰청과 교육부는 전수조사를 통해 현역 경찰공무원의 로스쿨 재학 현황을 파악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