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오 경기취재본부 기자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밤. 현장에서 50m 떨어진 모가체육관에는 전국에서 달려온 피해자 가족 50여 명이 모였다. 체육관에는 가족들의 눈물과 호소가 가득했다. "사망자가 많다더라" "구급차가 줄을 섰다"는 설만 무성할 뿐 이천시가 피해자 명단이나 이송된 병원을 확인·공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재난·재해 상황에서 현장 대응과 수습을 총괄해야 할 엄태준 이천시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자 가족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오후 11시 30분쯤에야 이천시 부시장이 처음으로 사망자 명단 일부를 발표했다. 그러자 "유독 이천에서만 이런 사고가 거듭되느냐" "시장은 어디 가고 부시장이 설명하느냐"는 항의가 나왔다.

가족들의 문제 제기를 듣고 기자는 현장에 있던 이천시 공무원들에게 "시장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고 또 제각각이었다. "코로나 대응에 피곤해 집무실에 가셨다"고도 했고, "몸이 좋지 않아 귀가했다"고도 했다. 소방·경찰 등 여러 명을 붙잡고 물어봤으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가족들은 체육관에서 밤을 꼬박 새웠으나 끝내 이천시장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튿날 오전 10시 30분쯤 체육관에 나타난 엄 시장에게 전날 밤의 행적을 물었다. 엄 시장은 "다른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현장'이 어딘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하면 내 휴대폰 위치 추적을 해보라"고 했다. 이처럼 이해가 안 되는 행적과 해명을 지적해 지난 1일 '이천시장이 참사 다음 날에야 유족을 찾았다'는 내용으로 보도했다.

그러자 엄 시장은 "허위 왜곡 보도"라며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에서 직원과 소통하며 회의를 했다"며 "악의적 보도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했다. 기자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직원이 누군지 대라"고 했다. 이 시장의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본지에 사과도 요구했다.

엄 시장은 본지 보도가 왜곡됐다고 주장하며 "언론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밝힐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언론이 사실관계를 밝히고자 던진 질문에는 당당하게 밝히지 않고 얼버무리다 뒤늦게 '주차장에서 소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직원들과 '소통'을 했다는데, 현장에 있던 직원들은 왜 '시장님은 귀가'라고까지 했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엄 시장은 가족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가족이 있는 현장은 챙기지 않았다. 대형 참사 현장에서 피해자나 유가족과의 소통은 지방자치단체장의 기본 의무다. 엄 시장은 38명이 숨진 현장을 관할하는 시장으로서 어떤 의무를 보이려 노력했는가. 언론 탓을 하기 전에 먼저 그 답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