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의 e스포츠 경기장에서 '2020 롤(LOL·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결승전이 열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500명이 들어가는 경기장에 나온 사람은 이날 맞붙은 'T1'과 '젠지'팀 소속 선수 10명과 스태프들뿐.

관중 대신 입간판 세우고 결승전 -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에 있는 '롤파크'에서 e스포츠 선수들이 '2020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결승전을 치르고 있다. 결승전은 코로나 여파로 무관중으로 열렸다. 주최 측은 좌석에 관중 대신 사람 모양의 입간판을 세웠다. 왼쪽 사진은 결승전을 진행 중인 프로게임단 SK텔레콤 T1 소속의 이상혁(게임명 페이커) 선수.

하지만 e스포츠 통계 사이트 'e스포츠차트'에 따르면 이날 소셜미디어와 포털을 통한 인터넷 생중계로 이 게임을 본 사람이 무려 1787만명이나 됐다. 이 중 한국인은 70만명이고, 나머지 1700만명이 외국인이었다. 작년 국내 프로야구 한 경기 평균 시청자(21만7000명)의 80배가 넘는다. 크리스 박 젠지 CEO는 "한국 게임 리그는 세계 e스포츠계의 대표 리그"라며 "세계 최고 선수의 플레이를 보려면 한국 게임 리그를 봐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사태로 국내 프로야구와 NBA(미국 프로농구), EPL(영국 프리미어리그) 등 주요 스포츠가 줄줄이 멈춰서자, e스포츠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특히 e스포츠의 '프리미어 리그'로 떠오른 한국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국내 e스포츠와 프로 게이머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e스포츠가 한국의 새로운 '문화 파워'로 군림하기 시작한 것이다.

◇축구는 메시, e스포츠는 '페이커'

최근 한국 e스포츠의 세계적 인기는 여러 지표로 확인된다. SK텔레콤의 e스포츠 스트리밍 서비스 '웨이브 5GX 멀티뷰'는 평균 시청 시간이 2~3월 사이 30% 넘게 늘어났다. 일부 국내 프로리그는 동시 시청자가 지난해의 3배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가 해외 시청자다. 시장조사 기업 웨드부시 시큐리티는 올해 e스포츠 시장이 지난해 대비 20%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한국이 수혜국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유가 뭘까. 세계 리그를 휩쓰는 스타 선수 상당수가 한국인이고, 이들이 한국에서 게임을 펼치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경기는 세계 최고 롤 게이머들이 모인 SK텔레콤 T1과 젠지의 라이벌전이었다. e스포츠 업계 관계자는 "축구로 치면 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맞붙는 빅매치 '엘클라시코'였던 셈"이라고 했다.

특히 T1 소속의 이상혁(게임명 페이커·Faker) 선수는 축구계의 '리오넬 메시'에 비유되는 수퍼스타다. T1 관계자는 "페이커는 롤 월드 챔피언십에서 최다 우승(3회) 기록을 보유한 압도적 실력의 선수"라며 "생일을 기념해 해외 팬들이 축하 광고를 내걸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올해 24세인 이상혁 선수의 연봉은 3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T1 역시 e스포츠 최고 명문팀이다.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로 명성을 떨친 임요환이 2004년부터 이 팀에서 활동했다. 페이커와 T1 팀이 널리 알려지면서 구단주인 SK텔레콤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유명해졌을 정도다.

◇커지는 e스포츠판, 투자도 잇따라

한국 e스포츠에 대한 투자도 쏟아지고 있다. BMW는 최근 SK텔레콤 T1과 스폰서십 계약을 맺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세계적 축구팀이 아닌 게임팀과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덕분에 T1 소속 선수들은 EPL의 축구 선수들처럼 BMW의 최신 차량을 지원받았다. e스포츠계 관계자는 "올해 글로벌 e스포츠 시청자가 5억명에 달하며 '주류 스포츠'로 발돋움하자, 럭셔리 브랜드도 e스포츠를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e스포츠 중계 경쟁도 치열해졌다. 페이스북 코리아는 지난 20일 게임 생중계 전용 앱을 선보였다. 시청자가 좋아하는 게임 방송자에게 돈을 줄 수 있는 '스타(별풍선)' 제도도 도입했다. 게임 스트리밍 시장을 양분해 온 아마존의 '트위치', 구글의 '유튜브'와 3파전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e스포츠 종주국"이라며 "이를 계기로 게임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세계를 휩쓰는 한국산 게임과 프로게이머가 더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롤(League of Legends, LoL)

미국 게임사인 '라이엇 게임스'의 히트작. 인터넷에 접속해 캐릭터를 선택하고 팀을 이뤄 상대 팀과 싸우는 게임. 월간 글로벌 사용자는 1억명 이상이다. 작년 11월 열린 '2019 롤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은 최대 동시 시청자가 4400만명이었다. 16국 언어로 세계에 생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