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아리송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한·미의 가장 중대한 안보 현안인 북한 최고 지도자의 신변 문제에 대해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 신변을 둘러싼 온갖 설(說)이 난무하는 가운데 북한이 침묵을 지키는 것도 이례적이다.

트럼프 "나는 안다, 말 못한다" 오락가락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에서 미국 노인 대상 코로나 바이러스 대책 관련 발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정은의 생사 여부에 대해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면서도 "당장은 김정은에 관한 얘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30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노인 대상 코로나 대책 발표 행사에서 김정은의 생사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며 "지금 당장은 김정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그저 모든 것이 괜찮기를 바란다"며 "나는 상황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지만, 공개할 수 없을 뿐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라디오 방송 '스콧 샌즈 쇼' 전화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자취를 감춘 것이) 통상적이지는 않지만 그 이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했다. 최근 김정은을 둘러싼 움직임이 비정상적인 것은 맞지만, 정확한 상황은 모른다는 뜻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김정은에 대해 '오락가락' 발언을 이어왔다. 데일리NK와 CNN 등이 김정은의 중태설을 보도한 직후인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트럼프는 백악관 브리핑에서 "그런 보도들이 나왔지만 우리는 모른다"고 했다. 그 이틀 뒤인 23일에는 "CNN이 가짜 보도를 했다고 생각한다"며 "오래된 문서를 썼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중태란 첩보가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이어 27일 트럼프는 "그(김정은)가 어떻게 지내는지 비교적 알고 있다. 아마 멀지 않은 미래에 그의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들이 이어진 이후인 29일 폼페이오는 "미국은 그의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면서 "어떤 정보도 없다"고 말했다.

텅 빈 김일성 광장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1일 이후 20일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 북한 주민이 지난달 30일 텅 빈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다. 국내외에선 1일에도 김정은의 신변 관련 각종 설이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호한 발언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은 "기자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는 것을 싫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김정은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더 확실한 발언을 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완전한 정보는 얻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트럼프는 뭔가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도록 의도된 여론전을 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도 출처를 감추려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며 "김정은의 건강 상태가 유동적이라서 발언이 오락가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북한의 반응을 떠보려는 심리전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처럼 '최고 존엄'의 유고설이 계속 거론되는데도 북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유고설 이후에도 김정은 동정 보도 등을 통해 그가 정상적으로 통치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 이상설을 불식할 만한 그의 사진이나 영상·육성 등은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평양에도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김여정 등 측근들과 지방에 체류하며 국정을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코로나 때문이라면 사진·영상을 공개 못 할 이유는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한 고위급 탈북민은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생일) 등 주요 행사에 불참하고 온갖 설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와병으로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는 "상황을 종합해 보면 김정은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살아 있어서 당·정·군 지휘명령 체계에는 이상이 없고 큰 동요가 포착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도 트럼프처럼 '눈길 끌기'를 시도 중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미국이 대선과 코로나 등으로 인해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상황에서 잠행 자체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며 "미국과 세계를 놀라게 할 군사행동과 함께 깜짝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