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산업1부 차장

가구당 최대 100만원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 위한 14조3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이 논란 끝에 지난 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생활비가 부족한 사람을 돕고, 실물경제를 떠받쳐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 이 막대한 예산이 효과를 보려면, 소비·생산 현장에 돈이 돌게 하고, 사람들이 지갑을 열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대형 마트 매출이 급감하자, 최근 안동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매월 2회 대규모 점포 의무 휴업'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안동시유통발전협의회에서 이 안건이 부결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소상공인 단체가 반대하자, 지역 정치권에서 "왜 우리가 앞장서서 이런 일을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반면 지난달 초 안동시는 생계 위기 근로자에게 최대 5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은 신속하게 결정했다. 예산으로 생색내는 일은 열심히 하면서, 정말 필요하지만 욕먹을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병폐가 미증유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대형 마트 의무 휴업'처럼 불필요한 규제만 풀어도 예산 지원 이상의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유통 업계는 월 2회 의무 휴업으로 인한 대형 마트의 매출 피해가 연간 3조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당초 규제의 의도대로 이 돈이 전통시장 등 지역 소상공인에게 흘러가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기업이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매출 피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전국의 대형 마트, 백화점 등 대형 종합 소매업 종사자 수는 8만명에 이른다.

정부가 이런 효과도 없는 규제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유통 업체에서 정부·국회를 담당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정책 결정권자들의 '아집(我執)'이다. 지금 같은 '유통 규제'가 처음 시작된 것은 2012년이다. 하지만 대형 마트 규제와 전통시장 부활에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은 여러 데이터로 입증되고 있다. 대형 마트 덕분에 주변 상권이 같이 살아난다는 통계도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대형 마트 규제가 잘못됐다는 증거가 나올수록, 오히려 제재를 강화한다"고 했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이제 대형 마트도 모자라, 복합쇼핑몰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하는 법안들이 대기 중이다.

이런 일이 유통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탈원전·원격의료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돈은 돈대로 더 들어가고, 효과는 반감된다. 지난 29일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는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허용, 전자상거래 수출 신고 항목 축소'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재탕·맹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더 분명하고 확실한 길이 있는데도 가지 않는 것은 이런 정책적 아집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