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소설가

2020년 봄처럼 혼란스러운 적이 있었나 싶다. 생수보다 싼 마이너스 유가를 보게 된 것도, 10퍼센트씩 곤두박질쳤다 치솟는 주가지수를 보게 된 것도, 텅 빈 에펠탑 광장을 보게 된 것도 그렇다. 갱년기 우울과 코로나 블루가 동시에 왔다는 뉴욕의 선배가 격리 중에 만든 ‘달고나 커피’ 사진을 보내왔다. 커피와 설탕을 넣고 달고나처럼 저어야 만들 수 있다는 이 커피의 핵심은 400번 이상 휘젓는 것이다. 그녀 말대로라면 체감상 4000번은 저어야 만들어지는 이 노동 집약적 행위는 21세기 시대정신인 효율성과 정반대 지점에 있다고 했다.

자가 격리 48일째. 미국의 확진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보던 날, 지구 저편 뉴욕에서 보내온 그녀의 달고나 커피 사진을 보며 영화 '우리의 20세기'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라 말했다. "행복한지 아닌지 따져보는 건 우울함으로 가는 지름길이야." 영화에 등장하는 앨빈 토플러의 책 '미래 쇼크'는 지금 생각하면 쇼크가 아닌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이 시기가 지나가고 후견지명이 생겨 2020년의 봄을 기억한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실은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금방 괜찮아져. 그래 봐야 또 힘들어지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이 대사가 선명한 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깨달은 진실 때문이다.

‘밤은 책이다’에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었다. 현재가 고달파도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불안해하면서 행복해지기는 어려운 법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아주 먼 미래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세우지 않게 됐다. 그저 미래가 내 예상과 너무 다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주 지나가는 길에 손님 없는 삼겹살 집이 있다. 나는 1월에 신장개업한 그 식당 문에서 일부러 떨어져 걸어간다. 자꾸 나를 손님으로 오인하는 주인의 눈짓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니 누구든 살아남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