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리 주말뉴스부 차장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한때 문학소녀였던 친구는 칼릴 지브란이 쓴 이 시구(詩句)를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며 맘을 다스린다고 했다. 칼릴 지브란은 배우자나 연인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었지만, 친구의 대상은 온라인 개학 중인 중학생 자녀다. 손가락 까딱하면 되는 '댓글 출석'에도 지각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진다고 했다. 나만 "코로나 시대에 정말 필요한 건 자녀와의 사회적 거리 두기"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다.

온라인 개학을 한 지 보름 남짓, 전국의 학부모들이 극기(克己) 훈련 중이다. 이토록 학교가 그리웠던 날이 없다. 교육부에서 슬슬 학교 문 열 채비를 한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서지만 귀가 솔깃해지는 이유다. 다만, 돌아갈 학교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학생의 87% 정도인 15억여 명이 집에 있다. 교육 선진국에선 '포스트 코로나' 학교 모델 구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언제 학교 문을 여느냐보다 어떻게 교육 패러다임을 바꿀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학교가 멈추자 보인 학교의 민낯을 찬찬히 곱씹어 교육을 재조합해야 할 때다. 온라인 개학을 취재하면서 만난 학부모들은 대체로 "공교육에 실망했지만 학교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포인트는 '교과 교육'이 아니라 '인성 교육'이었다. 공부는 학원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공동체 생활에서 이뤄지는 인성 교육은 도저히 집에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교육 포커스를 바꾸기 위한 여러 고려 중 '수업 다이어트'에 주목해야 한다. 식단에 비유하자면 현재 우리 학교 교육은 저단백 고열량이다. 통합 교과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과목 수가 많다. 온라인 개학을 하니 병폐가 더 또렷이 보인다.

일례로 중학교 1학년 아이의 시간표를 보니 과목이 13개였다. 온라인 개학에 맞춰 학교에서 개설한 온라인 강좌 수는 15개였다. 동영상 강의를 하루에 6~7개씩 듣는데 동영상이 다운돼 연쇄적으로 다음 수업이 늦춰질 때가 잦다. 과목마다 '형식적인' 숙제가 딸려 있다. 정식 개학 때 과제를 출석 증거로 삼는다니 담당 교사들로선 안 내 줄 수도 없다.

같은 나이 아이를 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6학년(우리 중학교 1학년에 해당) 아이가 배우는 교과 수는 6개인데 요즘 원격 수업으로 하루 세 과목만 듣는다고 했다. 기술적 결함과 수업에 못 따라오는 아이를 염두에 둔 조치였다. 적어도 새로운 환경에 교사, 학생, 학부모가 적응할 시간을 배려한 것이다.

이 얘기를 했더니 한 교육학자가 "학생들 필요에 따른 게 아니라 교과 이기주의와 교사들 밥그릇 싸움으로 만들어진 시스템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역사 과목을 예로 들며 "국사·동양사·서양사학과로 나뉜 서울대 빼고 대부분 대학에 사학과만 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한국사, 세계사, 동아시아사 등으로 잘게 쪼개 배운다. 말로만 통합 교과를 외친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제2의 코로나를 경고하며 학교도 유연하게 온·오프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비상시마다 수십 과목에 아이들을 빠뜨릴 수는 없다. 필요 이상의 배움을 주입하는 과거의 방식과는 절연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교과 수를 줄인 고단백 저열량 수업을 진지하게 고민해 AC(After Corona·코로나 이후) 시대 학교 모델을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