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오셨어요?"

톱과 전지가위를 손에 쥔 방장(方丈) 스님을 만날 줄은 몰랐다. 지난 27일 전남 순천 송광사 삼일암. 방장 현봉(玄峰·71) 스님은 선방(禪房) 뒷산에서 가지치기를 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기자와 마주치자 스님은 가이드를 자청했다. 산신각을 지나 효봉(1888~1966) 스님이 홀로 수행하던 터에 세운 '목우정'과 여름에 송광사 스님들 수영장이 된다는 연못 앞 '수석정'까지, 뜻밖의 30분 산책이었다.

경남 사천에서 출생한 현봉 스님은 1974년 구산 스님을 은사로 송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통도사·봉암사 등 전국 선원에서 수십 안거를 지낸 선승(禪僧)이자 '너는 또 다른 나' '선(禪)에서 본 반야심경' 등 경전 해설서와 저서를 냈고, 송광사 주지(2000~2003)를 지내며 이른바 이판(수행)·사판(행정)을 겸비했다.

송광사 스님들이 참선 수행 중 포행(산책)하는 선원 뒷산 오솔길을 방장 현봉 스님이 직접 안내했다. 효봉·구산 스님 등 큰스님들의 수행 자취가 서린 이곳을 현봉 스님은 '송광사의 비원'이라고 불렀다.

지난해 11월 조계총림 송광사의 최고 어른인 방장에 추대됐다. 주지 시절 전용차를 없앤 그는 방장이 된 후에는 전용차를 필요한 중진 스님들이 함께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불교의 핵심을 짚는 법문으로도 이름 높다. 거처인 삼일암은 과거 효봉 스님 시절엔 참선하던 공간. 스님은 "낡은 옛 구조이지만 큰스님들의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고 했다.

◇먼저 나의 등을 밝혀라

―부처님이 오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러 오셨습니다. 누구나 지닌 그것(불성)을 드러내라는 것이지요.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씀도 '오로지 나뿐이다'라는 뜻이니 남이 따로 없다는 것이죠. 스스로 서라는 말씀입니다. 그 출발은 제대로 잘 보는 것입니다. 제대로 보는 정견(正見)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부처님오신날 등(燈)을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이 마지막에 남기신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란 말씀도 먼저 내 등을 밝혀야 진리의 등이 켜진다는 뜻입니다. 밖이 아무리 밝아도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지요."

―코로나 사태로 봉축법요식이 한 달 연기된 초유의 사태 속에 부처님오신날을 맞습니다.

"이 사태는 엄청난 문명의 전환점이 될 겁니다. 당장 부처님오신날도, 학교 개학도 모든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것을 목격하고 있잖아요? 지구 입장에서 보면 자정(自淨) 기간일 수도 있죠. 불교에 공업(共業)이란 말이 있습니다. 모두 함께 지은 업이란 뜻이죠. 그동안 고정불변으로 여겼던 것들이나 추구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염병은 온 인류가 하나의 운명으로 묶여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바로 '연기법(緣起法)' 아닙니까?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너'가 있어 '나'가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코로나는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가 종식돼도 세계 어디엔가 남아 있으면 다시 감염될 수 있습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입장에선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에서 회복되도록 돕는 것이 스스로를 돕는 길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이 절실합니다."

◇지금 한국 불교에 간절함이 있는가

―스님은 출가 후 참선 수행, 경전 공부, 농사까지 다 하셨지요?

"처음 절에 와선 농사를 지었습니다. 쟁기질에 오줌장군도 졌는데 '현봉이가 심으면 고추, 감자, 호박이 많이 열린다'는 말도 들었죠. 그땐 선배 스님들이 오로지 선방에서 정진(精進)만 하는 게 그렇게 부러웠어요. 낮엔 농사짓고 저녁엔 좌선했는데 그 시간이 아까워 잠을 아꼈어요. 그 후 10여년 전국 선방을 다니며 수행했지요. 그러다 간절한 초심을 다시 느낀 건 1989년부터 1년간 배낭여행으로 성지순례할 때입니다."

이 땅에 자비를… 오늘 부처님오신날 -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련 속에서도 부처님오신날(30일)은 돌아와 전남 순천 송광사 마당에 색색 연등이 꽃으로 피었다. 불교계는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를 모두 1개월 연기했다. 대신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장엄등 점등식이 열리고, 전국 사찰에선 코로나 극복을 위한 1개월 기도가 시작된다.

―어떤 일이 있었나요.

"인도에서 시작해 유럽과 이집트, 이스라엘 등을 훑었습니다. 부처님 성지(聖地)뿐 아니라 문명의 발상지들을 몸으로 부딪치며 종교와 문명의 밑바탕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한 달 200달러 남짓 예산으로 매일 옮겨다녔습니다. 외롭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매일 다른 상황에 던져지는데 '나는 여권과 돈이라도 있지. 그 옛날 당나라 현장 스님, 신라 혜초 스님은 어땠을까'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아, 그동안 내가 선방에서 안주하며 지냈구나' 깨달았습니다."

―종교에 대한 관심도 변하고 있습니다.

"종교도 코로나 사태 이후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3대 생불(生佛)'로 불리는 달라이 라마, 틱낫한, 성운(星雲·대만 불광산사 창건자) 스님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망명객입니다. 망명한 그분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수행하고 포교했을까요? 지금 우리는 그 간절함이 있을까요?"

―평소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송광사는 국사(國師)를 열여섯 분 배출해 승보종찰(僧寶宗刹)이라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국사가 아니라 지금 송광사 스님 한 명 한 명이 승보가 돼야 합니다. 나아가 이젠 승보종찰을 넘어 사이버 종찰이 돼야 합니다. 스님들이 대충 법문하면 신도들이 바로 휴대폰으로 검색해 틀린 걸 지적하는 세상입니다. 수행이든 봉사든 스님들이 간절히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면 좋을까요.

"어려운 때일수록 기존의 틀에 매이면 대립이 되고 공존하기 어렵습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손발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지금은 특히 부처님 계율 같은 따뜻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계율이라면 '금지'를 먼저 생각하는데 공동생활의 하모니를 위한 리듬이 바로 율(律)입니다. 그 속엔 따뜻함이 배어 있고, 따뜻함은 공감과 공명(共鳴)을 부릅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이것(코로나)도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