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저명한 문명 비평가인 기 소르망(76) 전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 교수가 한국의 코로나 방역 성과에 대해 격찬을 하면서도 “한국은 감시가 심한 사회”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소르망은 엘리트 양성 학교인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와 파리정치대학에서 30년간 경제학 교수를 지냈다. 르피가로, 월스트리트저널, 아사히 등 세계 유수의 신문에 컬럼을 써왔다. 이명박 정부의 국제자문위원을 지냈고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지한파’ 지식인이다.

소르망은 27일(현지 시각) 보도된 프랑스 시사주간지 르푸앵(Le Point)과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폭넓은 견해를 이야기했다. 그는 ‘코로나 대처에 성공적인 국가들과 그렇지 못한 나라들을 구분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 영국처럼 질병의 심각성을 부인한 나라들은 귀중한 몇 달을 허비했고, 반대로 한국, 대만, 홍콩은 중국이 바이러스를 발표하자마자 곧바로 대처에 들어갔다”고 했다. 동양 국가들이 대응을 더 잘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프랑스 문명 비평가 기 소르망

소르망은 특히 한국에 대해 “(방역에 대한) 최고의 결과를 얻었다”며 “선별적인 격리조치라는 빈틈 없는 엄격한 정책 덕분에 많은 감염자 숫자에 비해 사망자가 적었다”고 했다. 그는 “의료진이 감염된 집단을 감지하면 그 안의 모든 사람을 검사해서 심각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입원시키고 나머지는 시설 격리를 해서 전체적인 봉쇄령을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소르망은 이어 “(한국에서 감염자에 대한) 추적은 감염 동선들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휴대전화 정보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인들은 이것을 받아들이는데, 그건 한국인들이 매우 감시받는 사회(une société très surveillée)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르망은 또 “유교문화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문화가 선별적인 격리 조치가 성공하는 데 기여했다”며 “한국인들은 지식인과 전문가를 신뢰하고 명령을 준수하며 개인은 집단 다음이다”라고 했다.

소르망은 프랑스의 방역에 대해 “한국과 거의 반대로 전략이 느렸고 투명하지 않았으며 (정부의) 설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국과 비교해 혹평할 정도로 한국을 치켜 세웠다. 그러면서도 소르망은 한국의 휴대전화를 사용한 위치 추적에 대해서는 “매우 감시받는 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정서적으로 동의하기 쉽지 않다는 뉘앙스를 드러냈다. 소르망이 이야기한 ‘감시 사회’의 의미는 정치 권력에 의한 직접적인 감시보다는 공동체를 영위하기 위한 시민사회 내부에서의 암묵적인 약속이란 의미에 가까워 보인다.

프랑스인 중에서는 휴대전화 추적에 대해 사생활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프랑스 정부가 방역을 위해 도입을 추진하는 ‘스톱코비드’라는 어플리케이션은 강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스톱코비드는 블루투스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가까이 있었던 사람의 정보를 익명화해서 저장해둔 뒤 만났던 사람들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 메시지로 알려주는 방식이다. GPS를 사용하지 않아 어디서 접촉했다는 장소 정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거센 반대에 부딪혀 있다.

프랑스 감염 추적 앱 '스톱코비드'의 추진을 총괄하는 세드리크 오 디지털경제부 장관.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인들이 ‘스톱코비드’를 활용한 감염자 추적에 반대하는 현상에 대해 프랑스 내부에서도 비논리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계 이민2세인 프랑스인은 “스마트폰으로 매일 같이 GPS를 사용하는 일상을 보내면서 GPS를 사용하지도 않는 스톱코비드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다”고 했다. 중국과 한국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20대 프랑스 남성은 “IT 산업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유럽에서는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미국 IT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중국,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며 “그런 사실은 외면하고 정부가 방역을 위해 익명으로 추적하는 것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중학교부터 다닌 한국인 박사과정 유학생은 “어릴 적부터 프랑스 대혁명 정신을 비롯해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그에 따른 자부심을 불어넣는 교육을 많이 받다 보니 프랑스인들은 국가 권력에 의한 감시에 대해 거부감이 큰 편”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이동 금지령이 내려져 있다. 따라서 집에 발이 묶여 원하는대로 이동하지 못하는 것보다 휴대전화 추적이 더 심각하게 자유를 침해당한 것이냐는 반론도 있다.

박은하 영국대사가 스카이뉴스와 인터뷰하는 장면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 영국 등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도 한국의 방역 방식이 개인 정보를 침해하고 사생활을 희생시킨다는 시각이 꽤 있다. 박은하 주(駐)영국대사가 지난 12일 방송사 스카이뉴스와 인터뷰했을 때도 앵커가 ‘한국에서 CCTV를 사용하고 휴대전화의 GPS 정보를 활용하고 신용카드 거래기록을 썼다는 데 대해 개인정보와 관련한 우려가 없는가’를 물었다. 박 대사는 이에 대해 “공중보건과 같은 더 큰 공익을 위해 한국인들은 개인 정보와 관련해 어느 정도 타협할 의사가 있고 그것은 시민의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