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 재난지원금 확보를 위해 법정 휴가를 못 간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연가(年暇) 보상비 4000억원을 삭감하면서 청와대와 국회, 감사원, 총리실, 국정원 등 '힘센' 기관들은 삭감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여당 원내대표가 국민에게 재난지원금 기부를 요구하면서 정작 이들의 직속 조직은 고통 분담에서 빠진 것이다. 반면 코로나 사태의 최전선에서 격투하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와 지방 국립병원 직원들은 연가 보상비 12억원 전액이 삭감돼 한 푼도 못 받게 됐다. 이 방역 공무원들은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느라 지난 3개월여 동안 연가를 쓰려야 쓸 수도 없었다. 연가는 물론 휴일마저 반납해야 했던 방역·보건 공무원들로부터 연가 보상비마저 빼앗겠다니 이럴 수도 있나 싶다.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코로나 대응에서 성공한 데는 질본을 비롯한 방역·보건 공무원의 희생이 큰 몫을 했다. 사태 초반, 중국인 입국 제한을 소홀히 하면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게 만든 정부의 실패를 이들이 헌신적 노력으로 만회했다. 질본 직원들은 몇 달간 집에도 못 들어가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바이러스와 싸웠다. 이들의 희생 덕에 전 세계에 '방역 모범국'임을 자랑할 수 있게 된 정부가 방역 공무원들을 푸대접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장은 정부 방침에 따라 4개월치 급여의 30%를 반납하기도 했다.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포상은커녕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추경안의 국회 상임위 심의 대상인 20개 중앙 행정기관만 연가 보상비를 삭감했다"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대고 있다. 방역 공무원들의 급여를 깎는 것이 국회 심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같은 정무위 소속인 금융위의 연가 보상비는 삭감하면서 총리 비서실과 국무조정실은 손을 대지 않았다. 행안위도 행정안전부·경찰청은 삭감했고 인사혁신처는 그대로 뒀다. 정부·여당은 총선 공약에 따라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지급'으로 확대하면서 소득 상위 30% 층에 대해선 '자발적 기부'를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통 분담으로 어려움을 함께 이겨 내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와 국회는 고통 분담 대신 손해 보지 않겠다고 한다. 무슨 낯으로 국민의 자발적 기부를 바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