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이 지난해 8월 출시한 가정간편식(HMR) '비비고 생선구이'는 3월 판매량이 2월의 두 배로 뛰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집밥'을 먹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전자레인지에 1분 돌리면 완성되는 초간단 생선구이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다. 이 회사는 최근 양을 두 배로 늘린 '비비고 생선구이 2마리' 신제품을 내놨다. 재택근무와 개학 연기로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늘어난 데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CJ제일제당이 운영 중인 비비고 팝업 스토어(임시매장)에서 현지 손님들이 주문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비비고 만두는 코로나 사태가 휩쓴 지난달 둘째 주 미국 내 주문량이 평상시보다 배로 늘었다.

코로나발 경제 위기로 부도 직전까지 내몰린 기업들이 속출하는 와중에, 일부 식품회사는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HMR 1위인 CJ제일제당, 라면 명가 농심, 제과 강자 오리온 등은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 안팎 늘고, 영업이익도 두 자릿수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본적으로 코로나로 집밥·간식 수요가 증가한 덕분이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바뀐 소비생활·구매 패턴에 민첩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해외시장에서도 현지에 맞는 전략을 펼쳐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었다.

◇코로나발(發)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

오리온은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2월 쿠팡·G마켓 등을 통한 온라인 판매가 급증하자, 한 번 살 때 많은 양을 구매하는 온라인 쇼핑 특성을 감안해 대용량 상품을 적극적으로 배치했다.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위한 파이류가 많이 팔리자 초코파이와 카스타드를 12개씩 한 상자에 묶은 '콤보' 세트 온라인 판촉 행사를 열었다. 인기 스낵 꼬북칩도 30g 소(小)포장을 12개씩 묶은 대용량 패키지를 내놔 판매를 늘렸다. 그 결과, 지난 2월과 3월 오리온의 온라인 매출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2%, 82% 늘었다.

농심은 영화 '기생충'으로 유명해진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를 지난 20일 출시했다. 소비자들이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각각 구입한 뒤 섞어 먹던 인기 조리법에 맞춰 아예 신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국내외에서 라면 판매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사만이 가진 독자적 경쟁력을 상품화해 판매를 늘렸다. 특히 미국 등 해외에서도 한국 라면과 짜파구리의 명성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 외국인 소비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전자레인지로 조리가 가능한 용기면 형태로 출시했다.

◇초기엔 간판상품, 이후엔 신제품이 매출 견인

비상 상황에서 소비자는 새로운 실험을 하기보다 늘 사던 것, 잘 알고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불안감에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던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햇반·비비고 국물 요리, 신라면·짜파게티, 초코파이·포카칩 등 시장점유율이 높고 브랜드가 강한 제품들이 많이 팔렸다. 농심의 대표 상품 신라면과 짜파게티는 2월 판매량이 30%가량 늘었고, CJ제일제당의 온라인몰에선 즉석밥, 비비고 국탕류, 냉동만두 등이 2월 마지막 주에 84%나 판매가 늘었다.

지난 2월 영국에서 열린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 관객들이 영화 상영 후 농심이 나눠준 신라면과 짜파게티, 티셔츠 등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달 농심 라면의 해외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약 40% 늘었다.

코로나 초기 각 사의 간판 상품이 매출을 끌어올렸다면, 현재는 다양한 신제품이 매출 증가세를 견인하고 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에는 햇반이나 비비고 국물 요리보다 다양한 간식용 식품이 매출을 늘려가고 있다. 예를 들면, '비비고 주먹밥'은 코로나 확산 전인 지난해 말 일종의 테스트 제품으로 일부 시장에만 내놨는데, 코로나 사태로 간식 수요가 늘어 20억원 넘게 팔리면서 이달 정식 제품으로 출시됐다. 오리온 관계자도 "꼬북칩 인절미맛, 포카칩 땡초간장소스맛·구운마늘맛 등 새로운 맛 제품이 고루 많이 팔렸다"고 했다.

◇효자가 된 해외 시장

코로나에 시달리고 있는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것도 효자 노릇을 했다. 오리온의 중국판 '오!감자' 스낵 '야!투더우(呀!土豆)'는 지난달 중국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183%나 폭증했다. 우한이 봉쇄되는 등 식품 구입에 제한이 걸린 중국에서 요깃거리가 될 수 있는 간식 제품의 수요가 늘었고, 오리온은 제품 홍보를 강화하며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야!투더우'는 2006년 출시돼 14년이나 지난 제품이지만, 현지 고객들의 주목을 이끌어 내며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오리온 중국 법인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7%, 247% 증가했다.

농심 역시 코로나 여파로 라면 수요가 증가하는 해외 시장을 공략해 지난달 해외 라면 매출이 전년보다 약 40% 뛰었다. 짜파게티 해외 매출은 116% 증가했고, 신라면은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에서 지난달 가장 많이 팔린 라면 톱 5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의 64%를 차지했던 '비비고 만두'도 코로나 여파가 휩쓴 지난달 둘째 주 기준, 미국 주문량이 배로 늘어 현지 공장 가동률을 높였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글로벌 식품 회사를 지향하며 해외 시장에서 수년간 현지화 전략을 펼쳤던 게 코로나발 식품 수요가 급증하는 국면에서 빛을 발한 것"이라며 "코로나가 소비자들의 식생활에 변화를 주는 모멘텀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국내 식품 회사들이 그에 맞는 다양한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